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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홈피에서 펌...(http://labordream.net/)
 
 
 



모지리 정태인 님은 한 때 잘 나가는 '시사평론가'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경제평론가'였구요. 한 때 잘 나갔다는 것은 지금은 별로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2002년 중반에 이른 지금은 또 아닙니다. 슬슬 잘 나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벌써 옛날 얘기고 2002년 대선이 끝난 후 정태인씨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경제분과 인수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한국의 재벌들은 아마 가슴이 뜨끔할 것입니다.)

참 이상한 것은 사람들이 잘 나가던 시대의 정태인보다 방송에서 짤린 후의 정태인을 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태인은 언젠가 다시 잘 나갈 것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또 출세한 후에는 당연한 듯 인간미를 상실해버리는 흔해 빠진 사람들과 달리 앞으로 아무리 잘 나가도 지금의 인간미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정태인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사람은 MBC FM을 아침 7시반에서 8시 사이에 열심히 들으면 됩니다. 그날의 뉴스 브리핑을 빙자하여 탤런트 김현주와 노닥거리는 걸 10분쯤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것마저 또 짤렸는지 하지 않더군요.)

푸른솔 강정미 씨가 정태인에 대해서 정리한 글 "내가 씨탱을 사랑하는 이유"와 2000년 2월쯤에 제가 정태인에 대해서 썼던 글 "씨탱 흉보기"를 옮기는 것으로 소개를 대신합니다. '모지리'는 정태인이 오래 전부터 써온 애칭인데 아마도 가는 곳마다 얼마 안 있어 짤리는 일을 모질게도 되풀이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들은 정태인을 그의 이니셜 '씨탱(ctain)'으로 더 즐겨 부릅니다.


<강정미> "내가 씨탱을 사랑하는 이유"

나우누리에서 '통신생활'을 시작했을 때 씨탱은 채팅의 짱이였다. 그와 쌍벽을 이루던 채팅의 여왕과 함께 그는 나우누리의 악명높은(?) 폐쇄동아리(회비를 내는 회원만 접근이 가능한) 21세기 프론티어를 장악하고 있었다.

당시 나우누리에는 하이텔에서는 없는 두 가지 아주 요긴하고 쓸모있는 써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쪽지기능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해당 방에 접속중인 모든 사람의 아이디를 확인하는 User기능이었다.

씨탱은 이 두 가지로 무장하고 프론티어의 언니들을 집중 공략했다. 프론티어에 접속하는 순간 1분 이내로 그의 쪽지를 받아 볼수 있었다.

"안녕...왔어? 뭐하니?"로 시작하는 그의 쪽지는 사실 뿌리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이었다. 왜냐면, 모니터 저 건너편에 누군가가 있어 늘 나의 출현을 반긴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 그를 잘 몰랐다. 뭐하는 사람인지도 몰랐고 이름 석자도 들어 본적이 없다. 심하게 낯을 가리는 편인 나로서는 허구헌날 채팅방을 열었다 닫았다하며 하는 일 없이 소일하는 그가 이상하게 보일 뿐이었다.

아마, 나는 그때 그가 던지는 쪽지를 팅팅~ 튕겨내며 잘난척 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였다면-지금 그게 기억나지 않지만-그가 광주를 무한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날 오전에 잠시 쪽지를 주고 받았던 것 같은데 오후에 삐삐가 왔다. 그가 광주에 떴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서울 사람 광주오는날이면 어김없이 번개를 때렸고 후하게 대접해 멕이고 재워 보내는 것이 일이었다.

단골집 장독대에는 이미 여럿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 하나 반은 취해 앉아 있더니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며 악수를 청했다.

"제가 정태인입니다."

그는 그치지 않고 말을 했고 주절주절 털어 놓는 얘기를 통해 나는 그가 그림그리는 아내와 아버지더러 서울대 나온것이 맞냐고 물어보는 여우같은 큰딸, 테드버어같이 귀여운 둘째딸과 함께 산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갈데 없는 박현채따라이스트로, 그를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며, 덩달아 광주를 좋아해서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조선대에서 기꺼이 강사노릇을 했던 것을 알게됐다.

그날, 그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여문언니는 씨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80년대의 여진에 떨고 있는 사람이다."

이 짧은 촌평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아마 내가 그 말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 전에 다 벗어던지고 새로운 깃발 하나씩 챙겨 들고 변신을 거듭하며 불과 5-6년 전의 자기를 스스로 부정하면서 그것이 포스트모던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의 경박함이 나는 싫었고 그의 순정이 귀해 보였다. 그것이 아직도 덜떨어지고 모자란 따라이스트짓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해 7월 말, 프로틴어는 여름휴가를 단체로 잡아 지리산행을 기획했다. 산행 내내 그는 두 가지를 잊지 않았다. 술과 수다. 하산하는 길에 하동에 들려 재첩국 한사발씩 하고 광주행 버스에 올랐다. 우연히 그의 옆자리에 앉게 됐고, 지리산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정말 닭똥같은 눈물 뚝뚝 흘리는 그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켜만 보아야 했다.

나는 숫컷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초 싫다. 냉택없이 남자다움을 강조하고 보스기질 시도때도 없이 내보이며, 장악하려는 인간은 밥맛이다. 씨잘데기 없이 근육 부풀리는데 시간보내는 남자는 기피대상 1호다.

대신 섬세한 인간을 좋아한다. 그걸 여성성이나 남성성이으로 구분하는데는 반대하지만, 어쨌든 일반적으로 여성스러움으로 지적되는 감수성 예민하고 감정 풍부한 사람이 좋다. 씨탱은 그런 인간이다. 요즈음에 그는 그런 글을 쓸 여력이 없지만, 그래서 아쉽지만 그가 아직 갈데없는 백수였을 때, 올빼미로 살면서 프론티어 게시판에 남겼던 글은 정말 주옥이었다.

또하나,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순전히 내 이기심과 사악함 때문이긴 한데, 내가 여하한 못된 땡깡을 부리고 짜증을 부려도 그는 다 받아준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다섯살짜리 마냥 심통을 부리고, 그에 대한 반응을 통해 사람들의 간을 보곤 한다. 그거 받아주는 인간은 내 기준에 따르면 괜찮은 인간이다.

씨탱은 우리 남편 다음으로 내가 편하게 울고 불고 떼써도 된다. 그러니 아니 좋을 수가 없다.

PS: 이 방 주인에게는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왜냐면 워낙 번듯해서 내게 헛점을 보여준 적이 없으니까 나도 차마 그럴 수 없다. 그 앞에서 나는 조금은 긴장해야 하지만 씨탱은 한없이 편해져도 된다.  흠...질투할까? 그럴 사람이 아니지...


<하종강> "정태인 흉보기"

오래 전에 내가 말했듯이 '씨탱'은 나에게 뭔가 감정이 있다. 나 역시 씨탱에게 감정이 전혀 없지 않다. 한 동안 우리 바닥에서 '경제통'으로 활약하더니 우리가 제일 필요로 할 때는 훌쩍 외국에 공부하러 나가버렸다. 이제나저제나 씨탱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사람들이 많았다. 부족한 상상력과 제한된 지식으로 무장한 단세포적 경제 관료들의 행태를 볼 때마다 우리는 '정태인만 돌아오면... 니들은 끝난다'고 얼마나 고대했던가. 씨탱은 얼마 후 고주망태가 되어서 돌아왔다.

씨탱은 한 동안 '말'지에 '모지리의 경제학'인가 하는 제목으로 경제칼럼을 연재하면서 폼을 잡았다. 그 무렵 나도 '길'지에 '노동백과'를 연재하고 있었는데, 씨탱은 대뜸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배님은 무슨 '노동백과'를 연재하고 그러십니까? '여성백과'라면 또 몰라도... '여성백과'나 연재하시지 그러셔요? 그게 더 인기 있을텐데..."

씨탱이 그렇게 나를 물고 늘어지는 이유를 나는, 정태인이 과거에 좋아했던 여자 후배가 정작 나를 좋아했던 일이 딱 한번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정태인은 그렇게 말해놓고나서 미안한지 얼른 이렇게 말했다.

"선배님은 '여성백과' 쓰시고, 저는 '술백과'나 쓰면 딱 어울릴텐데요. 그거 좋겠다. '모지리의 술백과' 하하..."

그 대화 이후 나는 '말'지를 정기구독했다. 연구소의 다른 직원이 이미 '말'지를 구독하고 있음에도... 순전히 정태인의 원고 때문이었다. 그러나 씨탱은 '길'지를 정기구독하지는 않았다.

씨탱이 며칠 전부터 기독교방송의 '시사자키'를 진행하고 있다. 손혁재, 정범구가 진행하던 그 프로다. 나는 그 목소리가 씨탱일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전에 잠시 진행했던 김칠준 변호사가 주변의 충고를 받고 목소리를 조금 바꿨나 싶었다. 어제 모처럼 처음부터 그 프로그램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경제평론가 정태인입니다."라고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우선 씹어야 하는 것은 씨탱이 내는 목소리다. 우리가 다 아는대로 씨탱의 매력은 헐렁하고 편한 느낌에 있다. 그런데 씨탱이 방송용으로 내는 목소리는 지나치게 야무지다. 너무 야무지려고 애를 쓰니까 오히려 가끔 버버거린다. 초대 손님이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예' '예' 하고 짧게 끊으면서 끼어드는데, 언제 한번들 들어보시라. 그렇게 야무질 수가 없다. 오므리는 입술 모양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씨탱아, 그냥 평소대로 헐렁하고 편하게 말해라. 아니면, 정말 '평소대로' 술을 몇 잔 걸치고 진행하든지...

그리고, 스스로를 '경제평론가'라고 소개하는 것도 좀 그렇다. 대부분 뒤에 '가'자가 붙은 호칭은 자기가 스스로 부르기에 좀 계면쩍다. 그건 그 분야에서 일정한 경지에 이른 사람을 존경하는 뜻도 조금 포함해서 부를 때 쓰는 호칭이 아닌가. 어느 신문에서 나를 '노동운동가'라고 표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내가 어디가서 "노동운동가 하종강입니다"라고 소개한다면 그건 거의 코미디에 가깝다.

씨탱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초대 손님들도 모두 '초록은 동색'이다. 이건 완전히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손혁재 박사가 진행할 때도 씨탱이 초대손님으로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방송을 들었던 김 아무개(이 양반은 요즘 자기 모교 근처 선거구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았다)가 "요것들이 '정 선생님, 그러니까 한국 경제가 말이지요. 어쩌구...' '그럼요. 손 박사님도 잘 아시다시피 어쩌구...' 하면서 아주 웃기더라구. 완전히 짜고 치는 고스톱이더라구."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씨탱아, 가끔 저쪽 놈들도 불러내서 완전히 좀 씹어버려라. SBS 라디오의 손혁재 박사는 무식한 '김지룡'을 아주 갖고 놀더만... 물이 좀 간 사람들도 종종 불러내고 그래라.

20년 전쯤,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다는 봉두완이란 사내가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미국 대사와 인터뷰 중에 "에이씨, 오늘 영어 되게 안되네." 따위로 개긴 이후, 방송 진행자에게는 내용과 전혀 관계없는 군더더기가 필수가 되었다. 그런데 씨탱의 진행에는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마치 잘 정돈된 FM 음악방송의 멘트를 듣는 것 같다. 씨탱아, 말이 토씨 하나까지 정리되어 나오지 않아도 괜찮으니 군더더기도 좀 달고 가끔은 좀 히히덕거리기도 하고 좀 그래봐라.

나중에 씨탱이 TV에도 진출하면, 평소의 변태성을 고려하여 가끔 이상한 체위로 토론을 진행하는 것 따위도 기대해 보는 게 어떨까? 아니면, 마이클 잭순이처럼 뒤로 걷는 거라도 좀 해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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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 id: 홈페이지 칼라 2009.05.06 22:18:05
    좀 옛날 글이지만 퍼왔습니다.

  1. NOTICE

    <소개> 모지리 정태인 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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