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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칼라블로거_정태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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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ko</language>
        <pubDate>Wed, 08 Feb 2012 05:36:5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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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국식 &apos;선진 시스템&apos;은 망했다. 그런데 한국은 왜…</title>
            <dc:creator>칼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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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668/245/0c3386694ca1940f1f333e791750aa93.jpg&quot; alt=&quot;ct.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451&quot; style=&quot;&quot; /&gt;&amp;nbsp;&lt;/p&gt;&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정태인(칼라TV 대표)&lt;br /&gt;&lt;/p&gt;&lt;p&gt;&lt;br /&gt;&lt;/p&gt;&lt;p&gt;&lt;br /&gt;&lt;/p&gt;&lt;p&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24px; font-weight: bold;&quot;&gt;&quot;FTA 체결, 딱 1년만 기다려 보자&quot;&lt;/span&gt;&lt;br /&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x; font-weight: bold;&quot;&gt;도대체 뭐가 국가경쟁력이고 국익인가?&lt;/span&gt;&lt;br /&gt;&lt;br /&gt;이명박 대통령이 오늘 국회 시정연설에서 &quot;이번주 미국 국빈방문을 계기로 미국 의회에서도 조만간 비준이 완료될 예정&quot;이라며, &quot;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은 국가경쟁력 측면에서 시급히 처리돼야 할 사안&quot;이니 &quot;우리 국회에서도 국익을 고려해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해주기를 당부한다&quot;고 말했다.&lt;br /&gt;&lt;br /&gt;맞다. 미국 의원들은 2007년 4월 한미 FTA가 체결된 이래 두 번의 재협상을 통해 챙길 걸 다 챙겼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 수출 밖에 경기회복을 할 방도가 없으니 FTA에 목을 매다는 것이다. 나서기 좋아하는 대통령에게 의회에서 연설 한번만 하게 해 주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이익을 좀 챙겼는지? 또 우리 경제가 그동안 수출에 목을 매단 결과가 그리도 바람직했는지? 예컨대 수출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이 물가를 뒤흔드는데 재벌기업의 천문학적 이익이 우리 국민들 살림살이에 좀 도움이 되었는지?&lt;br /&gt;&lt;br /&gt;이 대통령은 &quot;조만간 한미 FTA가 비준되면 우리는 세계 3대 경제권인 미국과 유럽연합(EU), 아세안 등과 FTA를 체결한 유일한 국가로, 세계 최대의 경제영토를 가진 나라가 될 것&quot;이라고도 말했다. 경제영토를 이렇게 따진다면 지금까지 세계 최대의 경제영토를 가진 나라는 멕시코였다. &quot;천국은 너무 멀고 미국은 너무 가까워.&quot; 미국과 FTA를 맺은 멕시코는 2009년 -7.1%의 경제성장율을 기록했다. 미국과의 FTA가 발효된 지 이제 18년째, 멕시코의 국가경쟁력은 얼마나 높아졌고 국익은 또 얼마나 신장됐는가? 아메리카 대륙의 복지선진국이었던 캐나다는 또 어떻게 되었는가? 놀랍게도 캐나다는 대표적 불평등지수인 지니계수순위에서 한국에도 뒤진 나라가 되었다(멕시코는 부동의 1위, 미국은 4위이다). 이런 미래를 위해 번역본도 믿을 수 없는 한미 FTA 비준을 이리도 서둘러야 하는가?&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x; font-weight: bold;&quot;&gt;미국의 선진 시스템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lt;/span&gt;&lt;br /&gt;&lt;br /&gt;&amp;nbsp;애초에 한미 FTA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안했던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현재 삼성 사장)은 2005년 5월, 청와대 브리핑 제1호에서 한미 FTA는 낡은 일본식 법과 제도를 버리고 미국식 시스템을 받아 들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김현종은 자신의 자서전 격인 책에서 &quot;노무현 대통령은... 선진 시스템을 갖춘 국가와 FTA를 체결해서 우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quot;(p59)라고 기술했다.&lt;br /&gt;&lt;br /&gt;맞다. 2005년 3월 내가 만난 대통령도 마찬가지 얘기를 했다. 그 미국식 시스템, 특히 서비스산업이 붕괴한 것이 작금의 세계경제위기이다. 지난 30년을 세계를 지배해서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블리웠던 이 시스템은 앞으로 계속 무너져 나갈 것이다. 한국의 기획재정부에는 아직도 금융허브의 꿈을 소중히 간직한 채 의료 민영화를 먼저 추진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미 FTA가 비준되면 장차 건강보험이 없어져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어도 우리는 현재 상태로도 되돌아올 수 없다. 투자자-국가 제소권은 그렇게 무섭다.&lt;br /&gt;&lt;br /&gt;미국과의 단교를 각오하고 한미 FTA를 폐기하지 않는 한 그렇다. 미국과 정말 단교하고 싶은가? 딱 1년만 미국에서 무슨 일어 벌어지나 지켜보자. 2007년부터 정부는 즉각 한미 FTA를 비준하지 않으면 무슨 큰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5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한미 FTA가 발효돼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당시 기획재정부 주장대로 리만 브라더스를 인수했다면 또 어떻게 됐을까? 현재의 상황에서 미국과 FTA를 먼저 맺겠다고 할 얼빠진 나라도 없으니 남들보다 먼저 FTA를 맺어야 한다는 정부의 안달은 그야말로 기우다. 과연 미국식 시스템이 그리도 좋은 건지 딱 1년 더 기다리는 게 그리도 어려운가?&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x; font-weight: bold;&quot;&gt;&amp;nbsp;1년 더 기다리면 우리나라가 망할까?&lt;/span&gt;&lt;br /&gt;&lt;br /&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668/245/9c89e95fe18084ebfe457675bbf2ed89.jpg&quot; alt=&quot;1318473673060_1.jpg&quot; width=&quot;260&quot; height=&quot;393&quot; style=&quot;&quot; /&gt;
&lt;br /&gt;▲ ⓒ한미FTA 저지 범국본 &lt;br /&gt;&lt;br /&gt;금융이나 공공서비스, 의료나 교육분야의 국내 규제를 &apos;개혁&apos;하는 것, 즉 규제를 풀고 민영화하는 게 정부의 최종 목표였지만 국민에게는 수출이 대폭 늘어나서 GDP가 6%나 증가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과연 그럴까? 이미 한-EU FTA가 발효됐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무역흑자가 대폭 감소하고 있다. 물론 정부 주장대로 선진국과의 FTA가 우리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lt;br /&gt;&lt;br /&gt;그러니 1년만 더 기다려 보자. 한-EU FTA가 우리의 생산성, 수출, 그리고 성장률을 그렇게 많이 증가시킨다면 그 때 한미 FTA도 발효시키자. 멕시코나 캐나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 과연 우리나라에선 일어날지 한번 지켜보자. 만일 한-EU FTA가 한국의 무역흑자를 대폭 증가시키고, 정부 주장대로 GDP를 매년 0,6% 이상 증가시킨다면, 그리하여 어느 순간 6% 추가 경제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약간의 기미만 보여도 난 아무 말 않고 한미 FTA 비준에 찬성하겠다.&lt;br /&gt;&lt;br /&gt;한미 FTA를 맺지 않으면 단 1년 만에 우리나라가 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몇%나 될까? 참여정부 때 한미 FTA를 목청껏 외쳤다 하더라도 민주당 의원 중 그 어느 누가 1년 연기에 반대할 수 있을까? 내심 한미 FTA 비준에 찬성한다면, 그래서 한나라당이 적당히 통과시켜 주길 바란다면 나에게, 아니 국민에게 그래야 마땅한 이유를 말해주기 바란다. 아마 한나라당 의원이라도 경제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이 있다면 이 정도의 신중함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꼭 미의회에서 대통령이 몇분 연설하는 대가로 이런 정도의 침착함마저 버려야 하는가?&lt;br /&gt;&lt;br /&gt;내 지식으로는, 그리고 현재 상황에 비춰 봐서는 한미 FTA는 우리 앞날에 어마어마한 걸림돌, 아니 낭떠러지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천보, 만보 양보하겠다. 이 어마어마한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또 미국경제가 갑자기 되살아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러니 딱 1년만 기다려 보자. 한미 FTA에 버금가는 한 EU FTA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리고 미국의 그 &apos;선진 시스템&apos;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결정하자. 지금 미국 월가를 점령한 수 많은 목소리를 들어보라. 미국의 &apos;선진 시스템&apos; 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딱 1년을 더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1년만 더 기다리자는데 그것도 안되겠는가? &lt;br /&gt;&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14 Oct 2011 06:21:41 +0900</pubDate>
                        <category>칼라TV</category>
                        <category>정태인</category>
                        <category>경제</category>
                        <category>F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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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촛불, 그리고 한미 FTA</title>
            <dc:creator>칼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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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24px;&quot;&gt;


&lt;/span&gt;&lt;/strong&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24px;&quot;&gt;&lt;/span&gt;&lt;/strong&gt; &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657/245/3ce477542fa194900d0f996172bc75df.jpg&quot; alt=&quot;ct.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451&quot; style=&quot;&quot; /&gt;
&lt;br /&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정태인(칼라TV 대표)&lt;br /&gt;&lt;/p&gt;&lt;p&gt;&lt;br /&gt;&lt;/p&gt;&lt;p&gt;&lt;br /&gt;&lt;/p&gt;&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24px;&quot;&gt;&lt;br /&gt;&lt;/span&gt;&lt;/strong&gt;&lt;/p&gt;&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24px;&quot;&gt;&lt;br /&gt;&lt;/span&gt;&lt;/strong&gt;&lt;/p&gt;&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24px;&quot;&gt;변화하는 세계와 우리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24px;&quot;&gt; 해법&lt;/span&gt;&lt;/strong&gt;&lt;/p&gt;&lt;p&gt;&amp;nbsp;&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lt;strong&gt;“1%에 의한, 1%를 위한 1%의”&lt;/strong&gt;&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gt;지난 일요일, 월스트리트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스티글리츠가 나타났다. 그는 시위의 성격에 대해 “1%에 의한, 1%를 위한, 1%의” 미국,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들은 소통을 원하는 것이라고, (그 날 MSN에 출연해서) 금융위기의 원인, 정부가 한 일,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관해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t;/p&gt;&lt;p&gt;스티글리츠와 마찬가지로 (역시 노벨상 수상자인) 크루그만은 이 새로운 대중운동이 월스트리트라는 올바른 표적을 잡았으며 궁극적으로 대전환으로 판명날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정치에서 정의가 제대로 이긴 적이 없다는 데 시민들이 분노한 것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이번만 해도 첫째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가들은 규제완화를 이용해서 거품을 만들어 거대한 폭리를 취했고, 둘째 거품이 터지자 시민들의 세금으로 구제되었는데도 셋째, 그들은 정치가들이 금융에 부과된 세금을 낮추고 위기 직후 만들어졌던 약한 규제마저 풀도록 만드는 것으로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당연히 월스트리트가 적이다. &lt;/p&gt;&lt;p&gt;시민들이 모르는 것이 아니다. 시위를 맨 처음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광고없애기”(Adbuster)운동은 “가장 간단한 요구로 시작한다. 정치에서 돈을 분리시키는 대통령 위원회를 만들라. 우리는 새로운 미국을 향한 의제를 만들고 있다”고 선언했다. “익명”(Anonymous)의 활동가들은 “맨하턴을 사람들로 넘치게 하라, 텐트를 세우고 부엌, 평화의 바리케이드를 만들어라, 그리고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고 호소했다. &lt;/p&gt;&lt;p&gt;이제 시위는 “부자에게 세금을”, “기업에 세금을”, “기업복지를 끝장내라”, “노동조합을 지원하라”, “메디케어(미국의 하층민 건강보험)와 사회안전망을 지키자”, 또 “미국연방준비은행을 감시하라” 또는 “없애 버려라”, “값싼 건강보험을 달라”, “군산복합체를 해체하라”, “전쟁을 끝내라”, 백화제방의 주장이 쓰나미를 이루고 있다. &lt;/p&gt;&lt;p&gt;오바마의 미약한 의료보험 개혁에 대해서도 “사회주의자”, “히틀러”등의 비난이 쏟아졌던 데 비하면 이들의 젊은 목소리는, 무너져 가는 미제국의 마지막 희망이다. &lt;/p&gt;&lt;p&gt;&amp;nbsp;&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x;&quot;&gt;&lt;strong&gt;촛불, 그리고 한미 FTA &lt;/strong&gt;&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gt;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쇠고기 완전 수입자유화를 약속한 데 분노해서 시작됐던 2008년 촛불시위는, 우리의 여중생들이 시작했던 그 촛불 축제는 무려 6개월 동안 이어지면서 “살고 싶어요, 자고 싶어요”, “0교시 반대”, “4대강 사업 반대”, “의료민영화 반대”로 의제가 확산됐다. 여기서도 부자감세 등 1%를 위한 정책, 날로 심해지는 양극화가 핵심이슈였고 휴대전화와 인터넷 방송이 우리의 무기였다. 말하자면 “점령하라”의 원조는 대한민국 “촛불”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소통을 원했다. 서울광장을 ‘점령’하려고, 상징으로라도 청와대를 점령하려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가.&lt;br /&gt;&amp;nbsp;&lt;br /&gt;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서 눈물까지 흘렸다지만 “명박산성”을 쌓아 소통을 완강하게 거부했고 시위가 잦아들자 벌금과 구류, 나아가 구속으로 맞대응했다. 쌓이고 쌓인 분노는 작년의 지자체 선거, 그리고 금년의 “무상급식 찬반 투표”로 표출됐다. 앞에 놓인 서울시장 등 재보궐선거, 그리고 내년의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에서도 우리는 “종이 짱돌”을 던질 것이다. &lt;/p&gt;&lt;p&gt;그러나 단지 정권 교체만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월스트리트가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모두 매수했다는 사실, 그래서 자신들의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우리 역시 잘 알고 있다. 삼성 등 재벌의 돈이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 조중동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우리의 힘과 요구를 보여주지 않으면 정치인이 얼마나 제 앞의 이익만 챙기는지, 또 얼마나 상상력이 없는지... &lt;/p&gt;&lt;p&gt;한미 FTA를 슬그머니 통과시키려는 국회가 이런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 미국 젊은이들이 분노하는 미국 시스템을 한국에 직수입하자는 게 한미 FTA다. 다시 한번 일어나자. 지난 4년간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그런데도 미래가 얼마나 어두운지 정치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럴 때만 실제로 우리의 미래가, 그리고 아이들의 삶이 열린다. 이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등록금을 어떻게 내릴지, 사교육을 그대로 놔둬도 괜찮은지, 4대강은 어떻게 되살릴지, 의료민영화 저지를 넘어 건강보험 보장성을 어떻게 강화할지, 재벌은 어떻게 규제할지, 가장 폭넓게 우리의 복지를 어떻게 설계할지 토론하자. 그리고 다시 한번 대통령에게 소통을 요구하자. 내년 의원후보, 대통령 후보들에게 요구하자. 세계는 변하고 있고 우리가 그 선봉이었다. 이제 그 변화를 최초로 제도화하는 나라가 되자. 월스트리트의 젊은이들에게 해법을 알려주자. 그게 존경받는 나라, 저들이 외쳐대는 “선진국”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lt;br /&gt;&amp;nbsp;&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14 Oct 2011 06:17:30 +0900</pubDate>
                        <category>칼라TV</category>
                        <category>정태인</category>
                        <category>한미 FTA</category>
                        <category>월스트리트</category>
                        <category>점령</category>
                        <category>경제</category>
                        <category>촛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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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대간 정의’와 한미 FTA</title>
            <dc:creator>칼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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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quot;right&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823/244/999ce23ac6eba3fa26036344c746c832.jpg&quot; alt=&quot;ct.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451&quot; style=&quot;&quot; /&gt;



&lt;/p&gt;&lt;p align=&quot;right&quot;&gt;정태인(칼라TV 대표)&lt;/p&gt;&lt;p&gt;&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lt;strong&gt;한미FTA는 미국의 위기를 들여오는 꼴이다.&lt;/strong&gt;&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지난 5월 2일자 &amp;lt;PD저널&amp;gt;에 &apos;88만원 세대&apos;의 본질은 ‘세대간 착취’라는 글을 썼다. 내 자식 잘 되게 하겠다고 사교육경쟁, 그리고 부동산 투기경쟁을 한 결과, 극소수의 승리자를 뺀 우리 아이들 모두 ‘88만원 세대’를 만들었으니 결국 그게 ‘세대간 착취’가 아니고 무엇이냐는 요지였다.&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이후에도 이 문제는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뱅뱅 돌아서, 뭔가 관련 있을 법한 자료를 모으고 읽었다. 결국 세계적으로도 뜨거운 논쟁 한 가운데 있는 개념에 다다랐는데 이름하여 ‘세대간 정의’(intergenerational justice)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연금이다. 전후의 베이비붐세대가 은퇴 후 연금을 타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쌓은 연금이 바닥났고 급기야 젊은 세대가 번 돈을 현재의 노인에게 바로 건네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럼 지금 젊은이들의 연금은 누가 줄 것인가? 인구까지 줄어든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세대간 정의의 범주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분야는 자연자원의 분배, 더 넓게 얘기해 ‘지속가능성’ 문제다. 역시 선인들의 지혜에 답이 있는가. 아메리카 인디언의 경구, “자연은 앞 세대에게 물려 받은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부터 빚내서 쓰고 있는 것”이라는 자연관은 문제의 정곡을 찌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얼마의 이자를 갚아야 할까, 즉 미래 할인율이 관건이 된다. 경제학계에서는 이미 적정 할인율을 놓고 논쟁이 시작됐는데 각자 세대간 정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각양각색의 답을 내 놓을 수밖에 없다. &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br /&gt;컨대 재생가능한 자원이야 다음 세대가 쓸만큼 남겨두면 된다지만 석유나 석탄과 같은 재생불가능한 자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먼 미래까지 생각한다면 당장 우리의 소비를 0까지 줄여야 하는데 그게 실행 가능한 일일까? &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br /&gt;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골치 아픈 문제로 하루 종일 머리를 싸매지는 않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어쩌면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 정도면 겪을 법한 문제인데도 우리에겐 너무 멀게 느껴지고, 또 스케일도 크기 때문이다. 사교육처럼 당장 우리가 합의만 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각자 도생하는 바람에 아이들 모두를 죽음의 고통 속에 몰아넣는 판에 어찌 이렇게 큰 문제를 다룰 수 있을까. 세대간 정의라니 내 일이 아닌 남의 일로 느껴질 것이다. &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br /&gt;2006년 2월, 협상을 시작했을 때부터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었던 한미 FTA 역시 너무나 커서 실감이 나지 않는 문제에 속한다. 지난 5년간 반대파들이 주야장천 외쳤고, 정부가 ‘괴담’이라고 일축한 주장들, 예컨대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먼저 미국에 매달린 결과 ‘4대 선결요건’이라는 것이 있었고 외교부가 마치 미국 관리인 것처럼 우리나라의 약값 정책에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심지어 외교부 관리가 훈령을 위반하면서까지 개성공단 문제에서 미국 편을 들었다는 사실, 대통령이 기꺼이 쇠고기를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위키리크스가 폭로했어도 우리는 그저 무덤덤하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나쁜 놈들, 거의 매국노 아냐?” 이 정도가 아닐까?&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br /&gt;한미 FTA가 아무리 어마어마한 사안이라 해도 ‘세대간 정의’만큼 막막하지는 않다. 김현종의 주장대로 미국식 법과 제도를 한국에 들여오는 것이 한미 FTA의 본질이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금융위기는 그 미국식 제도의 실상을 드러냈다. 답은 아주 명쾌하다. 우리가 서두를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br /&gt;미국이야 이제 살 길이 수출밖에 없으니 곧 한미 FTA를 비준한다지만 왜 우리가 그래야 하는가? 미국처럼 건강보험을 없애야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밝아질까? 아무리 미국에 대한 환상에 정신이 마비됐다고 해도 조금 더 두고 본 뒤 처리하면 안 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한미 FTA는 바로 내 일이요, 우리 아이들의 일이다&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07 Oct 2011 22:57:33 +0900</pubDate>
                        <category>칼라TV</category>
                        <category>정태인</category>
                        <category>경제</category>
                        <category>F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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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남호 회장께</title>
            <dc:creator>칼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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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quot;right&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329/210/13184a05bb64492c7477e8a2cade8cc5.jpg&quot; alt=&quot;정태인1[1].jpg&quot; width=&quot;270&quot; height=&quot;600&quot; style=&quot;&quot; /&gt;
&lt;/p&gt;&lt;p align=&quot;right&quot;&gt;정태인(칼라TV 대표)&lt;/p&gt;&lt;p&gt;


&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안녕하십니까?&amp;nbsp; 환갑을 넘은 나이에 50일 넘게 낯선 땅에 머무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아무리 외국이라도 호텔에 인터넷이 안 될 리는 없겠죠? 해서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아... 제 소개를 하는 게 순서겠군요. 회장께는 ‘듣보잡’이겠습니다만 저는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냈고 지금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라는 진보진영 씽크탱크에 몸담고 있는 정태인이라고 합니다.&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진보라니..,. 뻔한 얘길 하겠구나”, 컴퓨터 스위치부터 내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200일이 넘게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20일이 넘게 단식을 하고 있는 심상정, 노회찬 진보신당 고문들 얘기도, 그리고 정몽준의원처럼 국회 청문회 얘길 하려는 것도 아니고 부산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니까요. 순수하게 저는 경영 컨설팅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조선산업을 공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산업경제학을 전공으로 삼았고 청와대에서 실물경제도 들여다 봤으니 공짜 컨설팅 치고는 혹시 건질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잘 아시다시피 한국 조선산업은 세계 최고입니다. 삼성의 반도체나 현대의 자동차, 포스코의 철강이 우리의 대표 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설계 등 핵심 기술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는 조선산업 뿐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다른 산업과 달리 소품종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조선산업에서는 특히 노동자의 숙련과 응용 능력, 경제학에서 말하는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한국 조선산업 노동자들의 생산성은 압도적이지요. 유럽의 조선산업이 나날이 쇠퇴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노동자 평균 연령이 이미 55세를 넘어섰다는 점을 꼽는 걸 보면 한국의 경쟁력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amp;nbsp;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물론 아니죠. 다른 제조업과 꼭 마찬가지로 조선산업 역시 중국이 걱정입니다. 더구나 중국 선박조의 50%를 유럽이 주문하고, 유럽의 조선 업체들이 서서히 중국으로 진출하고 있는 건 조만간 우리에게 엄청난 위협이 될 겁니다. 해서 저는 한진이 필리핀 수빅에 대형 조선소를 건설한 것에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해외 생산이 중국과의 경쟁전략 중 하나라는 건 틀림없습니다. 임금이라는 요소를 생각한다면 당연하다고 까지 할 수 있죠.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그러나 다른 모든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임금이나 땅값, 금리와 같은 요소비용을 놓고 중국과 경쟁한다면 백이면 백 우리는 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현재의 기술격차를 유지하거나 더 벌리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저는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바로 적기”라는 속담보다도 훨씬 더 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90년대 초반에 제가 실리콘밸리에서 공부할 때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품질 면에선 당시에 이미 삼성TV가 소니를 거의 다 따라 잡았지만 가격은 절반에 불과했습니다. 그 후 10년이 지나서야 그 지위가 역전됐습니다. 초반에 따라잡는 데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을 수 있지만 마지막에 추월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요소비용을 줄이는 데만 신경을 쓴다면 조만간 중국에 추월당한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따라서 한진중공업이 살 길은 크루즈(여객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만드는 겁니다. 쇄빙선을 만든 자랑스러운 기억을 되살려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크루즈는 컨테이너와 또 다른 차원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안락하면서도 빨라야 하니 엔진부터 실내 가구까지 화물선과는 비교가 될 수 없겠지요. 삼성이나 현대도 겁먹을 정도지요. 그러나 저는 조선업계의 유명한 전설을 떠올립니다. 그 옛날 고 정주영회장이 현대 중공업을 창업하면서 그랬다지요. “조선산업은 철판을 이용한 건설산업”이라고요. 조회장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셔야 합니다. “크루즈는 바다 위에 호화맨션을 건설하는 것”이라고요.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한국 제조업 전체로 봐서 가장 큰 문제는 기계와 화학산업이 취약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방향을 알지만 고부가가치 선박에 도전하지 못하는 거지요. 하지만 중국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그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 기획재정부(구 재경부)는 금융허브를 만들겠다는 둥 완전히 방향감각을 상실했지만 지식경제부(구 산자부)는 확실하게 고급 선박 쪽으로 올바른 방향을 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조선이 아니라 해양산업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것도 백번 옳은 얘기지요. 또 하나의 다행은 울산과 광양의 철강, 마산창원의 기계산업, 더구나 부산신항과 광양항을 끼고 있는 부산이 천혜의 해양산업 적지라는 사실입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기업가는 1분 1초의 여유도 없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먼 미래의 장밋빛 그림이나 그리고 있으니 역시 책상물림이라고요. 하지만 한진이 이 쪽으로 가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영도조선소 자리에 주상복합아파트를 건설한다는 풍문이 사실이라면 한진중공업은 망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부산은 고급 아파트가 넘쳐 납니다. 세계금융위기는 언제 다시 불거질지 모르고, 우리의 부동산 거품은 언젠간 터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기에 영도에서 아파트 공사를 시작한다면 거의 100% 한진은 망합니다.&amp;nbsp;&amp;nbsp;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그래도 크루즈는 언감생심, 그림의 떡으로 보이실 겁니다. 현대나 삼성이 엔진과 전자제품을 도와주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더 눈을 크게 뜨면 유럽의 조선산업이 보이실 겁니다. 제가 비서관일 때 세계 최고의 기계설비 기업인 독일 티센크루프(Thyssen Krupp)의 한국 진출을 도운 적이 있습니다. 이들이 중국에 아시아 본부를 세우려다 한국으로 방향을 틀었던 건(이명박 정부 와서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중국의 부품 수준이나 기업 관행이 미덥지 못해서였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티센은 군함과 크루즈를 만들고 있고 당시에도 조선산업에서 합작할 기업을 찾고 있었습니다. 티센이나 핀란드의 아커(Aker)와 기술 제휴를 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유럽 기업들은 중국에 기술만 뺐기는 게 아닌가, 두려워 하고 있고 중국 역시 아직은 컨테이너가 목표기 때문에 유럽이 고급선박에서 한국과 협력할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amp;nbsp;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당장은 어떻게 하느냐구요? 수빅조선사가 수주했다고 발표한 물량을 결코 소화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회장님도 잘 알고 계시겠죠. 그 중 상대적으로 고부가가치, 그리고 규모가 적은 선박을 영도에서 만들면 2-3년은 문제가 없겠죠. 지금은 R&amp;amp;D 능력과 숙련 노동자를 길러야 할 때이지 ‘정리해고’할 때가 아닙니다. 그런데 회장님은 연구직들을 대량으로 감축하셨더군요. 거꾸로 가시고 계신 겁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아.. 정부도 문제라고요? 그렇습니다. 기업가 출신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대통령은 토목 프렌들리로 판명났고 지경부 장관은 이익공유제 말참견이나 하고, 주유소에나 관심이 있으니 정말 문제지요. 그러나 한진에 다행인 것은 이 정부의 수명이 이제 1년여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조회장께서 영도를 중심으로 ‘해양부산’을 내걸면 부산시와 지역사회 역시 한진을 적극적으로 도울 겁니다. 다음 그림을 한번 보시고 그 설계자가 되는 걸 꿈꿔 보시기 바랍니다. 세계 0.1%의 인구, 1%의 GDP, 그러나 10%의 해양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노르웨이의 모습입니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329/210/9b31fa894e955109ae77268c52835a46.jpg&quot; alt=&quot;1312713359421_1[1].jpg&quot; width=&quot;556&quot; height=&quot;348&quot; style=&quot;&quot; /&gt;
&amp;nbsp;(Poter, 2000, The Microeconomic Foundation of Competitiveness and the Role of Cluster)&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노르웨이는 부산과 경남의 인구보다도 적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부산/경남은 해양도시의 모든 면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조회장께서도 기업이 살고 노동자도 살고, 지역사회, 나아가서 한국도 사는 길을 안다면 과감하게 나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명백합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이 한마디만 기억하십시오 “영도 땅위에 아파트를 지으면 망합니다. 그러나 바다 위에 지으면 밝은 미래가 기다립니다” &lt;/span&gt;&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19 Aug 2011 12:00:13 +0900</pubDate>
                        <category>정태인</category>
                        <category>경제</category>
                        <category>조남호</category>
                        <category>한진중공업</category>
                        <category>영도</category>
                        <category>김진숙</category>
                        <category>정리해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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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나는 지식인이다</title>
            <dc:creator>칼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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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righ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829/208/3beae90671f81352f83aa16a7fb8d19b.jpg&quot; alt=&quot;정태인1[1].jpg&quot; width=&quot;270&quot; height=&quot;600&quot; style=&quot;&quot; /&gt;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righ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정태인 (칼라TV대표)&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나는 TV광(狂)이다. 한 때 나와 채널 경쟁을 했던 큰 아이가 “아빠가 아줌마야?” 할 정도로 드라마광이다. 지금도 6개월에 한 두 개 쯤 꽂히는 드라마에는 ‘본방사수’를 할 정도인데 요즘은 네 식구가 대충 의견 일치를 보기 때문에 채널 싸움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amp;lt;성균관 스캔들&amp;gt;, &amp;lt;시크릿 가든&amp;gt;, &amp;lt;최고의 사랑&amp;gt;이 그랬고 요즘 유력한 후보는 &amp;lt;무사 백동수&amp;gt;다). 9시 뉴스 시간에 집에 있을 땐 예외 없이 EBS의 &amp;lt;세계 테마 기행&amp;gt;을 보며, 늦은 밤 각 방송사의 다큐도 벅찬 가슴으로, 가끔 눈물까지 흘리며 본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요즘 웬만큼 바쁜 일 없으면 집이건, 식당이건 보는 프로그램은 MBC &amp;lt;우리들의 일밤&amp;gt; ‘나는 가수다’이다. 나는 술 취하면 거의 매번 연구원들을 노래방으로 끌고 가지만 실력은 가끔 빵점이 나올 정도로 형편없다. 하지만 ‘나가수’에서 누가 일등할지, 그리고 누가 꼴등해서 탈락할지를 맞출 정도의 눈치는 있다(어쩌면 우리 청중평가단은 다 나만큼 음치일지도 모른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829/208/e770deac3f335e5408a21ad286be07fb.jpg&quot; alt=&quot;20110321221356804.jpg&quot; width=&quot;492&quot; height=&quot;325&quot; style=&quot;&quot; /&gt;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그 엉성한 감각에 비춰 볼 때 박정현, YB, 그리고 아마도 김범수는 영원히 탈락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박정현은 금주에 그랬듯, 모든 장르의 도전을 즐기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너무 많이 나와 지겹다”는 이유로 외면당할 이유도 없을 듯 하다. 한편 옥주현은 떨어질 때가 됐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청중평가단은 역시 냉혹했고, 마치 아이돌 출신은 여기 오면 안 된다는 나름의 고집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가 임재범과 한 무대에 서는 건 ‘나가수’가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것이며, 이제 탈락했다 하더라도 그의 노래 인생은 서너 계단을 단숨에 올라섰을 것이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 문득 왜 지식인들 사이에선 이런 아름다운 무대가 없는 걸까, 내가 그 무대에 오른다면 어떤 모습일까, 매년 열리는 각종 학술대회는 왜 이런 긴장감이 전혀 없이 그저 때운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아니 지상에서의 간접 경쟁에서 조차 왜 이처럼 목숨을 건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그저 지엽말단의 실수에만 치명적인 칼날을 들이미는 걸까, TV 토론에서 왜 나는 상대의 무지와 옹고집에 방송 중에도 한숨을 쉬는 걸까(아마 상대도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서로 칼날 위의 경쟁을 하면서도, 심지어 아주 깊은 속으론 내 음악이 더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방금 드러난 다른 이들의 실력에 언제나 공감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왜 전문가 집단 사이에선 벌어지지 않는 걸까. ‘나가수’에선 분명히 이룬 ‘화이부동’이 왜 지식인 사회에선 불가능할까.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지금이야 말로 춘추전국시대처럼 제자백가가 백화제방 할 시기이다. ‘신자유주의’라는 한 시대가 저물고 그 다음 시대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때, 지식인들은 자신의 전문 영역을 넘어 다가올 시대에 대해 큰 그림을 펼쳐야 한다. 미래이기에 증명할 수 없지만, 예술가처럼 감각으로 미래를 예감하도록 할 능력은 없지만 지금이야말로 좁디 좁은 자신의 전문 영역을 넘어 전체 사회와 자연의 미래에 대해 예언할 때이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만일 우리 사회가 근시안과 좁은 이기심 때문에 지속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면, 그런데도 오로지 몇몇 정치인의 행보에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나를 포함한 모든 지식인들은 직무태만이라는 역사적 중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의료인들이 히포크라테스나 화타의 삶을 잊고, 교수와 교사가 공맹이나 권정생의 진정을 잊고 모두 각자의 전문가 울타리 안에서 적당한 보수를 누리고 있다면, 이강택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의 말대로 “지금은 언론의 위기가 아니라 언론인의 위기”일 정도로 언론의 공공성을 잊었다면 그 어찌 지식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도대체 시청률이 거의 유일한 잣대가 되고, 심지어 방송사주와 자신의 정치적 행로가 방송의 내용을 규정한다면 그런 방송인이 과연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조선시대 깐깐한 선비의 기준에 도달한 지식인이 몇 명이나 될까? 봉건시대의 선비들은 후대에 자신이 ‘소인’이라고 역사에 기록되는 것 만큼은, 그래서 후손이 부끄러워 하는 것 만큼은 걱정했는데 과연 지금은 그 무엇이 우리들을 규율하고 있는 걸까?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나는 지식인이다”라고 외치며 광장에서 우리의 미래에 관해 모두와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진보와 보수 모두 지식인으로서 지금 ‘나는 가수다’의 그들처럼 대중 앞에 나서서 그야말로 실력으로 경쟁해야 할 때가 된 게 아닐까? 적어도 20-30년은 지속될 대혼란이 우리 머리 위에 엄습해 있는데 이 시대의 지식인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lt;/span&gt;&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02 Aug 2011 21:43:48 +0900</pubDate>
                        <category>칼라TV</category>
                        <category>정태인</category>
                        <category>지식</category>
                        <category>방송</category>
                        <category>나가수</category>
                                </item>
                <item>
            <title>공공재로서의 방송과 민주주의</title>
            <dc:creator>칼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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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quot;right&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979/202/a79aba60e19917b4a52fe46d50a378c0.jpg&quot; alt=&quot;정태인.jpg&quot; width=&quot;270&quot; height=&quot;600&quot; style=&quot;&quot; /&gt; &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righ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정태인(칼라TV 대표)&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조중동매”. 요즘 언론계에 회자되는 이름이다. 종합편성채널을 따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를 한꺼번에 부르는 약어다. 재작년 말부터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종편’ 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는 글로벌 미디어 산업의 환상적 그림을 내걸었지만 현재의 광고시장 추세나 앞으로의 경제 상황에 비춰 볼 때 이 중 어느 하나도 살아남는다고 장담할 수 없기에 이들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서 안달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광고시장 자체를 넓히기 위해 이미 간접광고가 나가고 있고, 전문약품과 같은 음의 가치재(남용할 경우 문제를 일으키는 재화)의 광고를 허용한다든가 광고의 배분을 위한 미디어렙에서 종편채널을 제외하려는 시도들이 그것이다. 시청자들은 치열한 경쟁이 자아낼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종편 문제가 제기됐던 재작년말, 작년 초에 방송의 경제학에 관해서 간단하게 소개한 바 있지만 이번에는 광고까지 포함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보자. 우선 (공중파) 방송은 전형적인 공공재(public goods)이다. 새뮤얼슨의 고전적 논문 이래로 현재의 표준적 교과서는 공공재를 비경합성(non-rivalry)과 비배제성(non-excludibility)으로 정의한다. 이 중 비경합성이 더 중요한 요소인데 이는 &quot;집합적 소비&quot;(collective consumption)에서 비롯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나는 가수다”를 내가 소비한다(본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소비하는 것을 전혀 방해하지 않는다. 흔히 공공재의 예로 드는 국방과 마찬가지이다. 이름하여 비경합성인데 이는 내가 사과를 사서 먹으면 다른 사람이 동시에 그 사과를 절대로 소비할 수 없는 일반 재화와는 대조적이다. 흔히 이런 재화의 경우에는 공급자가 돈 안 낸 사람을 배제할 수 없다(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안 낸 사람을 배제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켰는데, 예컨대 수량이 풍부한 마을 공동우물은 공공재지만 계량기가 달린 상수도는 “클럽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재의 공급과 소비에는 무임승차(free riding)의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이기적인 소비자(‘호모 에코노미쿠스’는 경제학의 기본 가정이다)에게 현재의 방송에 얼마를 낼 용의가 있는지 묻는다면 “나는 백해무익한 TV를 보지 않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이 낸 돈으로 방송이 나온다면 나는 언제든 공짜로 “나가수”를 즐길 수 있다. 모두 이런 생각을 한다면 아무도 방송사를 경영할 수 없을 것이다. 돈을 벌기는커녕 나가수 제작에 드는 그 엄청난 비용을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 따라서 시장에서는 방송이 공급되지 않는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한편 비유하자면 민주주의도 공공재이다. 내가 민주주의를 한껏 누린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민주주의의 덕을 보는 걸 방해하지 않는다. 전두환 같은 희대의 독재자에게만 민주주의가 적용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없다. 당연히 민주주의는 시장에서 만들어지지도 않고 돈으로 살 수 없다. 만일 우리가 모두 이기적이었다면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목숨까지 거는 비용을 치러 민주주의가 달성된 후 그 과실은 전체가 골고루 누린다면 아무도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인간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동물이 아니라 때론, 또 어떤 사람들은 전체를 위해 희생하고 협력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민주주의는 공공재이고 따라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을 필요로 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trong&gt;언론과 광고의 경제학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지금 방송은 거의 하루 종일 나가고 있으며 방송3사, 나아가서 유선방송, 인터넷, 신문과 잡지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방송이 공공재라는 것은 방송의 한계비용(한 사람이 더 방송을 보는 데 드는 비용)이 0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일반적인 시장 원리에 따른다면 방송의 시청 가격 역시 0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럴 경우 사회의 후생이 최대가 된다고, 즉 파레토 효율이 달성된다고 경제학은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슨 돈으로 프로그램을 생산해내는 것일까? KBS1은 시청료로 운영한다. 나머지 방송3사는 광고 수입으로 운영하고 유선방송은 돈 낸 시청자에게만 방송을 내보내고 이와 함께 광고수입도 챙긴다. 한편 신문과 잡지는 구독료와 광고에 의존한다. 한국의 인터넷 언론은 미미한 광고수입과 자발적 기부금으로 수지를 겨우 맞추고 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결국 언론은 자발적, 또는 강제적 요금(시청료나 구독료)과 함께 주로 광고에 의존한다. 상업방송으로 분류되는 SBS은 물론, 공영방송이라는 MBC나 KBS2도 거의 전적으로 광고에 의존한다. 각 방송이 시간대 별로 치열한 시청율 경쟁을 하는 것은 이 지표에 따라 광고의 양과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방송사는 시청자와 광고주 양 쪽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경제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양면시장(two-sided market)이라고 부른다. 신용카드회사는 소비자와 가맹점을 매개하면서 수수료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방송사는 시청자와 기업을 매개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방송사의 비용과 이익을 기업이 광고료로 지불하고 시청자는 공짜로 방송을 보는 것 같은 모습을 띠게 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시청자는 채널을 선택함으로써 특정 프로그램에 투표하고 동시에 광고된 물건을 선택함으로써 특정 상품에 돈으로 투표한다. 만일 기업이 광고료를 물건 값에 전가할 수 있다면 기실 시청자는 소비자로서 프로그램 가격을 지불한 것이 된다. 티비에 광고하는 기업은 대부분 독과점이기 때문에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있으며 실제로 광고료는 기업 회계에서 비용으로 처리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방송사는 시청자의 (한계)짜증비용(nuisance cost, 광고가 너무 많이 나온다면 시청자는 채널을 돌려 버릴 것이다)과 (한계)광고수입을 비교해서 광고의 양과 가격을 결정할 것이다. 다른 한편 광고주는 광고로 인해 상품이 더 팔려서 생기는 한계수입과 광고비용을 비교해서 광고할 프로그램과 가격을 결정할 것이다. 결국 광고의 양과 가격은 두 시장의 균형이 일치하는(또는 적절히 협상되는) 지점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제 방송은 마치 시장에서 거래되는 일반 상품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trong&gt;언론과 광고, 그리고 민주주의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공공재와 관련한 골치아픈 문제가 해결된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결함은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 즉 이런 시스템이 언론의 ‘공공성’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공공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학술적으로 정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지만(개인 견해로는 각 재화나 서비스의 기술적 특성과 시장구조, 그리고 사회가 합의하는 공공의 가치를 동시에 고려해야 그 재화의 공공성을 정의하는 동시에 가장 적절한 조달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 언론의 공공성이 민주주의의 유지와 발전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민주주의가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면 언론은 그런 의미에서 체제재(system goods)에 속한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이라는 인식 하에 “거시건전성 규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론도 사회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에 의한 규제”가 필요하다. 하버마스와 롤즈가 (숙의)민주주의의 실현 조건으로 언론의 공정성, 특히 견해의 다양성(viewpoint diversity)을 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굳이 시장에 빗대어 말한다면 언론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양면의 시장”을 넘어 “삼면의 시장”(three-side market)의 플랫폼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이런 체제재의 공급 비용을 광고로 충당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방송사의 사활이 결린 시청율 경쟁은 언론의 공공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모델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론이 나올 수 있지만 고전적인 주장들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예컨대 스타이너(Steiner)는 이미 1953년에 인기있는 프로그램 유형이 과도하게 복제될 것이라고 예측했고(최근 한국의 각종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라) 노벨상 수상자인 스펜스와 오웬(Spence &amp;amp; Owen, 1977)은 특정 프로그램 유형은 공급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정했다(황금시간 대에 시사 프로그램은 결코 방영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광고로 운영되는 방송사들은 시청료로 유지되는 방송사에 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 놓지 않는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광고주는 잠재고객의 호주머니에 관심이 있으므로 시청자의 연령과 성별, 직업을 고려하게 될 것이고 그런 시선에 부응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될 것이다. 예컨대 가전제품은 3-40대 여성이 주로 구매 결정을 한다면 이들을 타겟으로 한 드라마가 방송될 것이다. 광고가 뉴스의 내용마저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은 더 심각하다. 이미 신문에서 드러났듯이 최대의 물주인 특정 재벌에 대한 비판은 아무래도 껄끄러울 것이고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 관한 뉴스는 분홍빛 전망으로 물들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서 지방방송이나 종교방송 등은 다양한 견해, 특히 소수자의 견해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필수적인데 광고는 시청율이 떨어지는 이 방송들을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광고시장은 언론의 공공성을 위해서 규제되어야 한다. 과거 한국광고공사, 그리고 현재 논의되고 있는 미디어렙은 견해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규제 중 하나이다(더 정교한 광고규제와 방송 내용의 규제에 관해서는 다음에 논의하기로 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trong&gt;“조중동매” 등장의 의미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조중동매”의 등장은 광고주의 협상력이 더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청율 경쟁이 격화되면 어쩔 수 없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게 될 것이다. 이미 “바보상자”로 불리고 있지만 바야흐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음의 가치재”가 될지도 모른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이미 신문시장에서 그러했듯이 재벌들이 밀어주는 “조중동매”가 보도 프로그램을 장악할 수 도 있다. 미국 폭스티비의 자극적인 “오라일리팩터”가 보수적인 시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견해의 획일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미 국제 보도에서 미국 시각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국내 보도가 재벌 시각으로 획일화되지 말란 법은 없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따라서 나는 KBS의 시청료를 높이는 데 찬성한다. KBS1 뿐 아니라 다른 방송, 나아가서 인터넷언론에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보조금을 줄 필요가 있다. 우선 이들 언론이 공공재라는 기술적 이유때문에 그렇다. 어차피 광고료를 소비자가 부담하는 거라면 차라리 국민의 세금으로 언론을 보조하고 시민이 직접 언론의 생산과 평가에 참여하는 쪽이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지금 KBS의 시청료를 높이려는 것은 KBS2로 가는 광고분을 조중동매로 돌리려는 의도가 너무나 빤히 드러난다. 광고 배분의 역할을 하는 미디어렙에서 조중동매를 제외하려는 움직임 역시 이들 방송을 재벌이 직접 밀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청료 인상, 또는 보조금 지급은 광고 및 방송 내용의 시민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과 함께 결정되어야 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모든 공공성 논의가 그렇듯 언론 공공성의 내용도 사회와 역사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특히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를 시민들이 결정해야 한다. 다양한 견해가 언론에 반영되어야 하며 언론은 그 토론의 장(하버마스의 “공론장”)이 되어야 한다. 재벌과 조중동, 그리고 경제관료라는 삼각동맹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조중동매”는 현재의 심각한 불균형을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높다. “북극의 눈물”과 “삽질경제”, 핵발전의 관계를 재계와 정부는 결코 밝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문화 역시 다양성이 중요하다. 그 누구도 1970년대의 ‘촌스러운’ 드라마나 뉴스를 원하지야 않겠지만 지금처럼 선정성 일변도로 나가는 것(불행히도 ‘막장드라마’의 시청율은 매우 높다) 역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순간 구질구질한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화면이 사라지고 온통 “까도남”과 “캔디”의 환상적 사랑 이야기 속에서 현실을 잊게 하는 것도 정도가 있을 것이다. 요즘 토요일자 신문에서 가장 먼저 펼쳐보는 서평란이 방송이라고 불가능할까.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광고로 유지되는 언론은 삼각형의 한 꼭지점인 시청자의 목소리를 사실상 빼앗아 갔다. 기업이 돈을 대고 시청자는 공짜로 방송을 본다는 외양이 시민으로서의 의무, 즉 민주주의와 언론 공공성 수호의 의무마저 잊게 만든 것은 아닐까. 물론 세금으로 언론을 보조한다고 해서 정부가 그 역할을 할 수는 없다. 국가권력 역시 언론이 견제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자본과 국가를 동시에 견제해서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라면 시민이 그 주체일 수 밖에 없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이 한탄한 것처럼 언론인 스스로 자신의 사명을 잊어버린 ‘언론인 위기의 시대’라면 더욱 더 그러하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quot;&gt;단순히 양면시장의 균형을 찾는 경제학을 넘어서 삼면의 균형을 꾀할 방법과 원리를 찾아야 한다. 현재와 같은 역사의 전환기에 언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깨어있는 시민”은 언론의 생산과 평가에 직접 참여하는 힘든 일도 감당해야 한다.&lt;/span&gt;&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15 Jul 2011 14:20:34 +0900</pubDate>
                        <category>정태인</category>
                        <category>경제</category>
                        <category>조중동</category>
                        <category>언론</category>
                        <category>방송</category>
                        <category>광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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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복지동맹 성공의 조건</title>
            <dc:creator>칼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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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quot;right&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975/198/7d99ce9277ee3af6aa190a3cc735086a.jpg&quot; alt=&quot;정태인1[1].jpg&quot; width=&quot;270&quot; height=&quot;600&quot; style=&quot;&quot; /&gt;



&lt;/p&gt;&lt;p align=&quot;right&quot;&gt;정태인(칼라TV 대표)&lt;/p&gt;&lt;p&gt;&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x;&quot;&gt;&lt;strong&gt;“스웨덴 모델은 왜 실패했는가?”&lt;/strong&gt;&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스웨덴 복지정책의 초석인 렌-마이드너 플랜으로 잘 알려져 있는 마이드너가 비통한 마음으로 위 제목의 글을 쓴 때는 1993년이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까지 내내 인플레이션의 문제를 노정하던 스웨덴은 그예 1991년 통화위기를 맞았다. 1984년에서 94년까지 미국의 1인당 실질 GDP는 3.0% 증가한 반면 스웨덴은 1.4%에 머물렀다. “스웨덴 병”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미국과 스웨덴의 주류경제학자들은 앞다퉈 ‘복지국가의 사망’을 선언했다. 그들에 따르면 스웨덴 등 북유럽의 평등주의와 그 결과물인 ‘지나친 복지’가 노동자들이 일할 유인을 없애고 도덕적 해이에 물들게 했으니 망할 수 밖에 없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그러나 스웨덴은 95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3.1%를 성장해서 미국의 2.8%보다 높은 성장률을 거둠으로써 ‘부활’하게 된다. 임금격차 등 각종 평등 지표에서 스웨덴은 여전히 수위를 달리는 반면 미국은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맞은 미국 학자들은 “스웨덴에서 배우자”며 호들갑을 떨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그렇다면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스웨덴의 자본자유화와 금융자유화(특히 85년의 대출상한규제 철폐), 그리고 조세개혁(특히 91년 이자에 대한 조세감면)은 전반적 인플레이션을 넘어 폭발적인 거품경제를 불러 일으켰다. 수출대기업을 위한 평가절하 정책에 따라 수출-내수 부문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수출분야의 남아도는 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더 쏠리게 만들었다. 이 상황에서 외국 자본이 빠져 나가면 바로 외환위기이다. 변동환율제 하에서 외자를 붙잡기 위해 이자율을 무려 500%까지 올렸어도 이 상황을 막지는 못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스웨덴의 부활은 1997년 분권화된 중앙임금교섭이 부분 복원되었고, 여전히 GDP의 25%를 차지하는 전통의 보편적 사회서비스(교육, 보육, 의료)가 복지와 고용을 동시에 지탱했기 때문이다.&amp;nbsp; 협력과 창의성을 살리는 교육, 성 평등청책에 의한 높은 고용율,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또 한번의 산업구조조정을 성공시켰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요컨대 위기의 원인은 거시정책이었고 동시에 노동자 연대의 붕괴였다. 사회 양극화를 가져오는 거시 정책을 쓰면서 복지를 유지하거나 확대한다는 것은 스웨덴에서 조차 불가능했다.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이유(자본자유화와 금융규제 완화)로 경제위기를 맞았던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부활 역시 동일하게 설명할 수 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x;&quot;&gt;&lt;strong&gt;아메리카의 복지국가 캐나다의 비극 &lt;/strong&gt;&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이 땅에서 정말 살기 힘들어 이민을 택하고자 할 때 우리 국민의 머리에 떠오르는 제1순위 나라 중 하나가 캐니다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캐나다는 1989년에 미국과 FTA를 맺었고 1994년에는 이 협정을 확대해서 멕시코까지 포함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발효시켰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과연 당시 세 나라 정부의 주장대로 성장률이 높아지고 그 결과 복지도 확대되었을까? 지난 20여년간 지니계수로 측정되는 소득 양극화 현상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멕시코, 그리고 3-4위를 고수하고 있는 미국은 아예 검토 대상도 아니다. 아메리카의 유럽, 캐나다는 15년 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다행히도 캐나다는 2008년 금융위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캐나다 은행은 왕립은행의 전통에 따라 일반적인 예금 및 대출 업무에 종사했고 파생상품을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바젤II보다도 더 강한 자본규제와 유동성 규제에 따라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주택가격의 버블도 존재하지 않았다. 개방과 민영화, 규제완화에 적극적이었던 멕시코가 2009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자본 및 금융시장의 건전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캐나다 사례는 다시 한번 웅변하고 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그러나 캐나다의 경제성장, 고용, 그리고 실질임금은 나프타의 약속과 달리 지난 15년간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1990년부터 2009년까지 20년 동안 경제성장율은 연 평균 2.25%(1인당 GDP는 1.2%) 정도로 자유무역협정을 맺기 전인 80년대의 3%에 비해 오히려 떨어졌다. 실질임금은 96년에서 2006년까지 10년 동안 고작 4% 가량 증가했으며, 캐나다 정부가 나프타를 맺으면 따라잡을 거라고 장담했던 미국과의 생산성 격차는 2000년 경부터 더 벌어지고 있다. 전 산업 부문의 생산성이 1% 이상 증가해서 매년 5% 이상의 추가 성장이 일어날 거라는 한국 정부의 주장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이다.&amp;nbsp;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그 결과 2000년대 10년간의 중간 지점에서 지니계수로 측정한 소득불평등은 OECD 국가 중 나쁜 쪽에서 13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은 물론, 놀랍게도 14위를 차지한 한국보다도 캐나다의 불평등지수가 더 높았다. 1990년대 초반 이래 OECD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캐나다의 GDP에서 차지하는 공공사회지출의 비율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나프타 이후 캐나다 정부는 ‘노동복지’(workfare), ‘의무국가’(duty state), ‘사회투자국가’ 등의 구호를 내세워 노동의 의무를 강조하며 복지를 축소했다. 특히 실업급여 제도에서 수급자격의 강화, 급여의 축소, 수급기간의 단축을 통해 현격한 후퇴가 일어났다. 앞에서 본 스웨덴 비판의 핵심인 “복지병”을 치유하기 위한 정책을 실제로 수행한 것이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클락슨 등 캐나다 학자들의 주장대로 나프타는 외부헌법, 또는 초헌법의 역할을 했다. 일반적인 복지정책, 특히 공공성 강화정책은 나프타의 여러 독소조항과 부딪힐 수 밖에 없다. 특히 투자자국가제소권은 캐나다의 공공정책을 가로막는 핵심 역할을 했다.&amp;nbsp; 1994년에서 2010년 7월까지 캐나다는&amp;nbsp; 알려진 사건만 28건의 제소를 당했다. 한국정부가 강조하는 “예외조항”이 나프타에도 유사하게 존재하지만 자연자원 관련 10건, 환경보호 7건, 심지어 우편서비스 2건 등 핵심적인 공공정책이 그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소송이 진행된 사건보다 돈을 주고 타협한 사건이 더 많을 것이고 소송을 우려한 공무원들이 지레 포기한 정책 또한 숱하게 많을 것이다.&amp;nbsp;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한국이나 멕시코처럼 복지제도가 거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력한 양극화 세력, 즉 시장만능주의를 신봉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면 FTA의 위력은 배가된다. 멕시코의 전화나 철도 민영화의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미국 금융위기의 엄청난 폐해를 보면서도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는 물에 들어가야 한다”(박병원 전 경제수석)며 여전히 메가뱅크-투자은행을 추진하는 대통령 측근이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경제위기 덕에 주춤하고 있지만 물 민영화, 가스 및 철도 민영화, 특히 의료민영화를 여전히 호시탐탐 노리는 곳에서 ‘거대 경제권과의 FTA’는 복지 확대는 커녕 복지 축소를 가져올 것이 틀림없다. 협상에서 미래유보로 빠졌다고 하더라도 자발적 민영화와 FTA가 결합하면 투자자국가제소권의 대상이 됨으로써 어떤 비극이 발생해도 되돌아갈 길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x;&quot;&gt;&lt;strong&gt;복지국가가 되기 위한 조건 &lt;/strong&gt;&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스웨덴이나 캐나다에 비한다면 복지에 관해서 우리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가에 불과하다. 연부역강한 청장년의 경우에도 금융규제 완화와 투기, 그리고 시장주의 정책기조를 따랐을 경우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지난 15년간 지속된 양극화 시대 우리 국민의 의식을 사로 잡은 구호는 “부자 되세요”라든가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 따위였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심각한 양극화 속에서 “나와 내 아이만은 승리할 수 있다”는 미몽에서 깨어나 비로소 다 함께 사는 길, 즉 복지를 요구하게 되었다. 지난 2008년의 총선과 작년의 지방선거를 비교해 보면 가히 상전벽해라고 부를만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하지만 지난 15년 동안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한, 복지국가는 험난한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미국식 FTA를 맺고, 자발적인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함으로써 엄청난 규모의 양극화를 촉진하면서 복지로 그 구멍을 메운다는 것은 4대강 사업을 하면서 홍수방지책을 만드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지출만 늘리면 필경 재정이 악화되어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적반하장의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당장 부동산투기와 사교육 등 투기를 근절해야 하고 금융거래세를 부과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양극화, 학력과 성에 따른 양극화를 시정하는 정책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amp;nbsp; 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새로운 금융거시건전성 규제를 도입하는 것도 필수적인 일이다. 한마디로 기존의 경제정책기조를 확 바꿔야만 복지동맹이 승리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모든 일을 꾸준히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우리 아이들 대에 이르면 “아시아의 모범적 복지국가”라는 영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lt;/span&gt;&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Wed, 06 Jul 2011 18:12:14 +0900</pubDate>
                        <category>정태인</category>
                        <category>경제</category>
                        <category>복지</category>
                        <category>스웨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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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애정씨의 눈물</title>
            <dc:creator>칼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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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p&gt;&lt;p&gt;&amp;nbsp;&lt;/p&gt;&lt;p align=&quot;right&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432/191/2565f544779cf2a379d42607b636d65f.jpg&quot; alt=&quot;정태인1[1].jpg&quot; width=&quot;270&quot; height=&quot;600&quot; style=&quot;&quot; /&gt;
&lt;br /&gt;정태인(칼라TV 대표)&lt;/p&gt;&lt;p&gt;&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내가 작년에 인터넷방송인 칼라티비에서 진행했던 인터뷰, “정태인의 호시탐탐”은 삼성특집을 했다. 당연히 삼성 반도체의 백혈병 관련자들도 여러 번 출연했는데 이 인터뷰는 짧은 질문 한 두 개로 끝냈다. “정애정에게 황민웅은?” 정애정씨는 2006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민웅씨의 부인이다. 한 시간이 넘는 인터뷰에서 줄곧 밝고 씩씩하게 대답하던 정씨가 이 마지막 질문에 갑자기 고개 숙여 눈물을 뚝 흘리며 한 답은 이랬다. “제 모든 거요.” &lt;/span&gt;&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432/191/480052efe2c9b3c59a9bd30267c196e2.jpg&quot; alt=&quot;_MG_7360.jpg&quot; width=&quot;800&quot; height=&quot;533&quot; style=&quot;&quot; /&gt;
&lt;/span&gt;&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지난 2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 14부(부장판사 진창수)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 등 8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이 중 일부가 앓은 병과 삼성의 업무 사이에 인관관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현재 투병 중인 다른 직원 2명과 유족 1명에 대해서는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피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고 일부 영향을 받았더라도 백혈병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말았다. &lt;/span&gt;&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대한민국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를 다 장악하다시피한 삼성에 맞서 피해자 가족들과 “반올림”의 거둔 승리였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볼 때 너무나 뻔한 산업재해의 보험금을 받기가 이리도 어려운 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삼성은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반도체 공정에 사용된 화학물질도 밝히지 않았고, 재판에서 원고들 스스로 그 물질의 존재를 제시하고 병과의 인관관계까지 입증해야 한다니 이건 지극히 불공정한 게임이다. &lt;/span&gt;&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미국 역시 그랬다고 위안을 삼지 말라. 우여곡절을 겪은 후 캘리포니아에서는 전자공장에서 사용하는 위험물질을 지역사회에 알리는 데까지는 나아갔다. 반도체 산업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반도체 공정에서 유독물질을 사용하며 실리콘밸리를 필두로 전 세계에서 유사한 사고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1980년대가 지나면서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삼성 기흥공장, 또는 온양공장 제 몇 라인에서 무슨 화학물질을 사용했는지를 안다는 건 제 아무리 전문가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법원이 삼성의 당시 작업일지나 화학약품 구입 목록만 제출하라고 했어도 해결될 문제이다. &lt;/span&gt;&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남편이 남긴 두 아이를 키우는 일만으로도 허리가 휠 정도면서도 서울을 오르내리며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주위를 환하게 만들던 정애정씨의 실망이 얼마나 컸을까?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기쁨의 눈물이에요. 이것만 해도 큰 성과예요. 여태껏 싸워온 게 조금이나마 보상 받는 느낌이에요. 기쁩니다” &lt;/span&gt;&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삼성전자는 이날 판결 후 보도자료를 통해 &quot;반도체 사업장의 근무환경과 관련해 공인된 국가기관의 2차례 역학조사 결과와 다른 판결&quot;이라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역학조사에 피해자와 가족은 들어갈 수 없었다. 삼성은 아마 더 그럴듯한 자료도 제출할 것이다. &quot;권위있는 해외 제3의 연구기관에 의해 실시된 반도체 근무환경 재조사 결과를 다음달 중으로 공개할 예정&quot;이라니 말이다. 무슨 굉장한 걸 원하는 게 아니다. 앞의 두 역학조사와 새로운 재조사 원본과 원자료를 모두 법원에 제출해서 제3의 전문가들이 검증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quot;삼성전자는 언제나 임직원의 건강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있다&quot;는 주장을 깨알만큼이라도 믿을 수 있지 않겠는가?&lt;/span&gt;&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여기 삼성 입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청춘의 한 토막을 기꺼이 삼성에 바쳤고, 또 거기서 결혼하고 애까지 낳았지만 졸지에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이 있다. 그리고 비슷한 환경에서 일했던 노동자 중 불치병으로 이미 사망한 사람만 무려 46명이다. 유족들의 절절한 고통을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이미 기밀로서의 가치는 하나도 없을(반도체 산업은 가장 기술발전 속도가 빠른 분야이다) 화학약품 목록과 당시 장비 목록을 내놓는 게 그리도 어려운가. “휴먼 삼성”과 “인간에 대한 예의”는 단 한치의 공통점도 갖고 있지 않은 걸까? 삼성이 사람에겐 눈물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과연 알기는 아는 걸까?&lt;/span&gt;&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01 Jul 2011 09:00:39 +0900</pubDate>
                        <category>정태인</category>
                        <category>칼라TV</category>
                        <category>삼성</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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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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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주노총은 복지세력인가?</title>
            <dc:creator>칼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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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quot;right&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411/178/3b83a2063c54fad9aecb37c6c6c35d99.jpg&quot; alt=&quot;정태인1[1].jpg&quot; width=&quot;270&quot; height=&quot;600&quot; style=&quot;&quot; /&gt;



&lt;/p&gt;&lt;p align=&quot;right&quot;&gt;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lt;/p&gt;&lt;p&gt;&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x;&quot;&gt;&lt;strong&gt;복지논쟁과 노동&lt;/strong&gt;&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지난 금요일 광주의 5.18재단이 주최한 “5.18 시민강좌 종합토론회”에 다녀 왔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정치권에서 복지 논쟁이 뜨겁다. 야권의 “모두에게 복지를”(보편복지)에 맞서 한나라당은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를”(선별복지)를 내세웠고 민주당 내에서는 “증세없는 복지”와 “증세를 통한 복지”가, 그리고 진보진영에서는 “부자들의 증세”(내라)와 “우리 모두의 증세”(내자)가 맞서고 있다. 복지의 백화제방, 아름다운 풍경이다. 굳이 내 생각을 말하라면 “우리 모두의 증세에 의한 보편 복지”라고 대답하겠지만 지금은 단번에 정답을 내 놓는 경쟁을 할 때는 아닌 듯 하다.&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한나라당이 참가하지 않아서 다소 김이 빠졌지만 민주당의 “보편복지”와 진보정당들(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의 그것 사이에는 꽤나 큰 차이가 났다. 복지의 규모부터 그렇지만 증세를 둘러싼 예산확보 방안에서는 “대립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시각이 달랐다. 그러나 그 어느 것보다도 진보정당들이 복지의 주체로 “노동”을 강조했다는 점은 분명한 철학의 차이를 드러냈다. 민주노동당은 이름부터 “노동 중심 평화복지”이고 진보신당의 “사회연대 북지국가” 역시 “생산체제(노동시장)와 계급간 연대 전략(연대 노동)을 빼 놓고는 복지를 논할 수 없다”고 못박았으며내 사회당의 복지전략 또한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을 축으로 하고 있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이들은 서구의 복지국가를 예로 들면서 노동조합 조직율(프랑스의 경우 적용율), 그리고 진보정당 지지율이 복지국가 형성의 핵심이라고 구체적인 통계로 입증하려 했다. 그 뜻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 질문은 이 지점을 향했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그렇다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합쳐서 10% 남짓의 조직율을 보이는 한국에서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게 불가능한다는 얘긴가?” “진보정당 지지율은 그 보다도 더 낮은데, 그렇다면 적어도 이번 총선과 대선에서 ‘진정한 복지국가’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는 건가?” 뾰족한 답이 있을 리 없는 질문, 그래서 보통은 공개 석상에서는 잘 하지 않는 무례한 질문을 한 셈이다. 내친 김에 한 마디 더 했다. “예컨대 참여연대 회원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조사하면 복지에 찬성하는 비율, 나아가서 증세에 찬성하는 비율이 어디가 더 높을까?”한마디로 과연 지금 민주노총은 이른바 “복지 세력”인가, 라는 도발적 질문이고 세 정당보다는 민주노총이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재분배 이전에 사회양극화를 초래하는 근본부터 보아야 한다는 세 진보정당의 시각은 지극히 옳다. 세 정당 모두 노동시간 단축을 중요한 고리로 내세웠다는 것도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amp;nbsp; 휴식이 늘어난다는 자체의 복지 효과 뿐 아니라 노동 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 확대, 생산성 향상에 의한 세수 확대 등 노동시간 단축은 복지의 주요 전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단일 항목에 진보정당들이 배정한 예산은 5천억원-7천억원 정도에 불과하고 국가에 의한 노동관련 복지 확충(예컨대 일자리 창출과 실업보험, 실업부조 지원제도에 돈을 집중적으로 배정하고 있다. 혹시 이들 정당이 말로는 그렇게 해도 별로 실효성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물론 노동시간 단축은 제도로 정하고 엄격히 관리하면 그만이어서 별도의 예산이 들지 않을 수 있지만)?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정부와 재계를 일단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노동계는 노동시간 단축에 찬성할까? 난 조직 노동, 그 중에서도 대기업 위주인 민주노총이 제일 반대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60-70년대 저임금-장시간 노동 체제라는 게 있었다. 너무 임금이 낮아서 노동시간을 늘려 겨우 먹고 살았다는 의미이며 경제학을 조금 사용한다면 노동공급이 임금이 낮을수록 오히려 증가하는 “&amp;lt;”모양의 공급곡선을 지니고 있었다. 그 때에 비해 임금이 1000배 가량 증가한 지금도 이 시스템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40대에서 50대의 중장년 중화학공업 노동자들은 아이들 사교육비와 부동산 값을 대기 위해 여전히 잔업과 철야를 반복하고 있다. 총액임금이 중산층 이상이라 하더라도 월급은 애들 교육비로, 대출 이자로 주먹 속 마른 모래처럼 금세 빠져나간다. 더구나 외환위기 때의 경험(“언제 잘릴지 모른다”)은 일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일해야 노후 걱정을 그래도 덜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하청업체 등 다른 중소기업, 또 비정규직과의 임금격차가 심해지면서 더욱 더 대기업 노동자들의 해고 비용(해고되면 치러야 할 대가)은 높아졌다. 바로 그만큼 파업이나 이직 위협 등 노조의 무기는 무뎌졌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결국 대기업의 조직 노동자라고 해도, 사회 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연대”라는 아름다운 가치, 그리고 노동계급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또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어떤 복지를 도입한다 해도, 또 마찬가지로 부동산투기, 교육투기, 그리고 대기업의 전횡이라는 양극화 메커니즘이 존재하는 한 “밑빠진 독에 물붓기” 꼴이 될 수 밖에 없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결국 양극화 메커니즘을 해체해서 노동자들의 삶이 투기에 묶이지 않도록 하지 않는 한 노동자계급, 특히 대기업 노동자들이 복지동맹의 핵심 주체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그들이 그런 상황에서 다른 계급은 더욱 더 그러할지도 모른다. 누누히 강조하는 일이지만 복지 정책은 그에 걸맞은 거시정책과 함께 함께 추진해야 한다. 스웨덴의 렌-마이드너 플랜이 단순한 연대임금 정책을 훌쩍 넘어선 거시안정정책, 생산성 향상정책이었고 그 체제가 무너진 후 스웨덴 복지국가가 흔들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민 모두를 절망에 빠뜨리는 양극화 메커니즘부터 무너뜨려야 한다. 그런 거시정책, 즉 자산재분배정책과 노동연대 정책이 조화를 이루고 그 실현가능성을 국민들이 믿을 때 복지국가는 비로소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진보정당이 이런 비전을 제시하고 집권 및 실천의 믿음을 줄 수 있을 때 노동자를 복지의 주체로 불러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거꾸로 렌-마이드너의 LO가 그랬듯 노조가 고유의 비전을 진보정당에 제시하고 스스로 노동시간 단축 등 연대의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정당, 나아가서 국민을 이끌고 나가는 것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과연 민주노총은, 금속노조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실로 민주노총은 복지 세력인가, 아니면 소극적 반복지 세력인가?&lt;/span&gt;&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31 May 2011 18:14:39 +0900</pubDate>
                        <category>정태인</category>
                        <category>경제</category>
                        <category>민주노총</category>
                        <category>노동</category>
                        <category>세금</category>
                        <category>복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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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quot;반값 등록금&quot; 반대한다</title>
            <dc:creator>칼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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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quot;right&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401/178/8a584301641d04864b2691a6c98ef188.jpg&quot; alt=&quot;정태인1[1].jpg&quot; width=&quot;270&quot; height=&quot;600&quot; style=&quot;&quot; /&gt;



&lt;/p&gt;&lt;p align=&quot;right&quot;&gt;정태인(경제평론가)&lt;/p&gt;&lt;p&gt;&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지난 29일 한국 대학생 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 이행하라”며 청와대로 가두 행진을 벌이다 73명이 연행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대학생들이 제 목소리를 낸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대학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기 위해 7조원의 예산을 들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진보신당과 민주당 역시 3조 2천억원을 배정했다. 급기야 한나라당도 2조원을 들여서 등록금을 낮추겠다니 6월 임시국회에서는 여야가 합의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될 전망이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반대는 거의 전부 보수의 몫이다. 조선일보는 전국 400개의 대학 중 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이 77개나 되는데 등록금 지원은 세금으로 이들 부실사학을 지원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또 전여옥 의원은 그럴 돈이 있다면 고등학교 의무교육부터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재정적자에 대한 걱정도 줄을 잇는다. 일리가 있는 주장들이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더구나 대학의 80%를 차지하는 사립대학교들 중 77%는(2008년) 자신의 의무인 재단 전입금마저 제대로 내지 않았다. 나아가서 수도권의 이른바 일류 사립대학은 어마어마한 액수의 기금을 형성하여 전국에 세금 한푼도 내지 않는 땅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등록금 인상을 주도하고 있다. 아무리 등록금을 높여도 정원을 채우지 못할 확률은 0이기 때문이다. 하여 등록금 문제를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주체는 바로 대학들이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한편 정부 재정으로 등록금을 낮추어야 하는 이유 역시 탄탄하다. 우리나라 GDP는 세계 13위 권이지만 등록금 총액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에 이른다. 그리고 그 이유 중 일부를 전체 교육 예산 중 대학교 등 고등교육에 지출하는 비율이 유럽 국가 95%, 미일 50%에 비해 우리는 15%에 불과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니 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리고 대학에 대한 사회의 통제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진보의 주장 또한 옳다.&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amp;nbsp;&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그러나 거의 사회적 합의에 이른 “반값 등록금”에 나는 반대한다. 우리가 지금 복지를 확대해야 하는 이유는 양극화 때문이다. 양극화로 인한 피해는 당장의 경제적 효율성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어떤 정책이 아무리 복지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더라도 양극화를 촉진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면 그 정책은 올바른 정책이 아니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대학 등록금이 바로 그렇다. 현재도 대학 입시경쟁은 과잉이다. 그런데 대학 다니는 비용을 낮춰 준다면 대학에 가려는 사람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입시 경쟁은 더 격화될 것이다. 결국 현재 대학 등록금 인하가 그 이상의 차세대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류 대학교가 주도하는 등록금 인상은 언제라도 재현될 수 있다. 거시동학을 무시한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똑같이 교육 비용을 줄이는 일이라면 현재 20조원을 훌쩍 넘어선 사교육을 중지시키는 것이 백배, 천배 낫다. 민주노동당의 7조원도 매년 사교육비의 1/3에 불과하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으며 교육기회의 평등이라는 점에서도 훨씬 정의롭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당장 아이들의 고통은 어찌 할 것인가? 차라리 아르바이트 최저 임금을 대폭 올리는 것이 낫다. 대학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 등 자산을 처분해서 등록금을 낮추도록 유도 할 수도 있다. 만일 거부한다면 정부의 지원을 줄이는 추가 제재도 가능하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대학에 대한 예산은 각 지방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대학의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 일류대학을 향한 과잉 경쟁은 무엇보다도 심각한 임금격차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격차를 어떻게든 줄이는 것이 대학 등록금 인상을 막는 가장 근본적 처방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대기업의 횡포를 막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부동산과 교육 투기, 그리고 재벌의 과잉 권력은 현재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촉진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88만원 세대의 비극은 이 메커니즘을 통한 ‘세대간 착취’의 결과다. 이를 놔두거나 부추기면서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이다. 내가 반값등록금에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lt;/span&gt;&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31 May 2011 18:08:55 +0900</pubDate>
                        <category>경제</category>
                        <category>정태인</category>
                        <category>반값</category>
                        <category>등록금</category>
                        <category>대학</category>
                        <category>복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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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화엄의 촛불</title>
            <dc:creator>칼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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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quot;right&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173/178/08c6f5899f215c95a2a07b6379c31a8d.jpg&quot; alt=&quot;정태인1[1].jpg&quot; width=&quot;270&quot; height=&quot;600&quot; style=&quot;&quot; /&gt;
&lt;/p&gt;&lt;p align=&quot;right&quot;&gt;&amp;nbsp;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lt;/p&gt;&lt;p&gt;&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x;&quot;&gt;&lt;strong&gt;서울역 회군&lt;/strong&gt;&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정말 몰라서 묻는 건데 그 날 왜 교정으로 돌아가자는 결정을 했죠?” 11년 전 내가 CBS의 시사자키를 진행하던 때, 5.18 특집에 출연한 유시민(현 국민참여당 대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1980년 5월 15일 오후 우리는 서울역에 있었다. 관악에서 영등포로, 그리고 신촌으로 돌고 돌아 서울역 광장에서 농성했다. 회현고가도로 위에서 수많은 시민이 박수를 쳤고 시청으로 돌진하던 버스에 불이 붙었다. 이내 신군부가 효창운동장에 공수부대를 집결시켰다는 둥, 아니 관악산에 도착했다는 둥 각종 소문이 나돌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온갖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교정으로 돌아가자는 결정을 내렸다. 아니 사실상 해산을 했다. 바로 “서울역 회군”이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173/178/d294e0e6d34fffa031d48d0f5f2fa77b.jpg&quot; alt=&quot;2005051740105954[1].jpg&quot; width=&quot;450&quot; height=&quot;269&quot; style=&quot;&quot; /&gt;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무서워서 그랬죠” 그는 허탈할 정도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나중에 확인한 증언에 따르면 당시 서울대 대의원회 의장이었던 유시민은 “여기서 해산하면 끝이다. 여기서 신군부의 실상을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현 한나라당 의원)은 “잠시 물러나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다시 움직이자”고 했다. 당시 배후세력이라 할 만한 서울대 복학생 협의회 의장은 이해찬(전 총리)이었다. 이들을 비난하려 함이 아니다. 나 역시 “망했다”고 생각했지만 저 깊은 속으론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았는가.&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그리고 광주에서 학살이 시작되었다. ‘체계적인 계획’은 하나도 실행되지 않았다. 계엄령이 내려질 경우 영등포 시장에서 모이자고 했지만 나 역시 그 시간에 버스 탄 채 약속 장소를 지나쳤을 뿐이다. 또 한번 사람들이 모이지 않은 것을 한탄했지만 내 안에선 “살았다”는 속삭임이 흘러나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우린 정체 불명의 체포 명단을 빌미로 각자 숨어들었다. 그 이듬해 정말 말이 없었던 동기, 그래서 목소리조차 기억나지 않는 김태훈이 “전두환은 물러가라”를 세 번 외치고 도서관 6층에서 뛰어 내렸다. 그는 광주일고 출신이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x;&quot;&gt;&lt;strong&gt;화엄 광주, 그리고 촛불 &lt;/strong&gt;&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훗날 보고 들은 광주는 화엄의 공동체였다. 김밥을 나르고 물을 건네며, 저들이 기대했던 방화와 약탈을 간단하게 우스갯거리로 만들었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승리의 공동체였다. 광주는 87년 6월 항쟁으로 군부독재를 영원히 종식시켰고 위기 때마다 촛불을 일으켜 두 번이나 개혁정부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살아 남은 우리는 화엄의 공동체를 재현하기에 터무니없이 무능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치욕의 부끄러움은 2008년 5월 또 다시 되살아났다. 여중생들이 “이제 15살, 살고 싶어요”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모두가 하나 되는 화엄광주가 서울 광화문에서, 대구 동성로에서, 광주 금남로에서, 전주 덕진로에서 그리고 강릉에서 대구에서 한점 한점 촛불이 되어 피어났다. 그것도 어린 아이들의 손에서 일렁이며 번져나갔다.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 100일이 넘도록 그 뒤를 따랐지만 우리는 ‘명박산성’을 넘지 못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여전히 살아 있는 우리는, 또한 여전히 무능하다. 광주의 학살자들 쪽에서 쇠고기 전면 수입 자유화를 받아 들여 기어이 한미 FTA를 비준하려 하는데 일부는 ‘원죄’ 때문에, 또 일부는 힘이 없어서 입으로만 반대하고 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어디 이 뿐인가. 살고 싶다는 그 아이들을 죽음의 경쟁 속으로 더 깊숙이 밀어넣고 있는 것도 살아남은 우리다. 아이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남을 못 믿고, 가장 불행하다고 호소하는데도 그저 경쟁교육의 내용만 이리 저리 변주하고 있을 뿐이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언제 화엄의 공동체를 꿈꿨냐는 듯, 오로지 개인적 승리에 매달리던 우리들이 이제서야 정신을 차린 것일까. 지방선거는 아직 희망의 불씨가 살아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단순히 정권을 바꿔서 될 일이 아니다. 진정한 화엄 광주를 이 나라에 되살리기 위해선 죽음으로 치닫게 하는 전 시스템을 바꿀 구체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실천하는 것만이 이 치욕에서 벗어날 길이다. 다시 한번 화엄의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야 한다.&lt;/span&gt;&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27 May 2011 19:38:08 +0900</pubDate>
                        <category>정태인</category>
                        <category>촛불</category>
                        <category>광주</category>
                        <category>서울역</category>
                        <category>회군</category>
                        <category>유시민</category>
                        <category>심재철</category>
                        <category>이해찬</category>
                        <category>518</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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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88만원 세대와 투기 - 우리는 왜 깨어있는 시민이 못 될까</title>
            <dc:creator>칼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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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quot;right&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650/176/1d827c64ce22cbe722973324f609bfbb.jpg&quot; alt=&quot;정태인1[1].jpg&quot; width=&quot;270&quot; height=&quot;600&quot; style=&quot;&quot; /&gt;



&lt;/p&gt;&lt;p align=&quot;right&quot;&gt;&amp;nbsp;&lt;/p&gt;&lt;p align=&quot;right&quot;&gt;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lt;/p&gt;&lt;p&gt;&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x;&quot;&gt;&lt;strong&gt;우리들의 행동방식과 “88만원 세대”&lt;/strong&gt;&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내가 요즘 푹 빠져 있는 건 행동경제학이다. 이 생각의 흐름 밑바닥에는 방법론적 개인주의(개인이 어떻게 행동할까)가 있다. 그리고 난 맑스주의, 즉 구조주의와 역사주의로 훈련된 사람이다. 물과 기름처럼 도저히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두 방법론이 내 안에서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박현채선생의 말씀, “진보란 민중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라는 궁극의 목표가 이 불편한 공존에 대한 내 나름의 변명이다. 결국 실용인 셈인데, 멋진 이론의 틀을 만드는 게 아니라(어찌 사적 유물론이나 일반균형론과 같은 아름다운 그림을 또 다시 만들 수 있으랴) ‘민중의 정책’을 만드는 게 내가 살 이유라면 그리 머리 싸매고 고민할 일도 아니다.&amp;nbsp; 어중이 떠중이로 시작했다가 바로&amp;nbsp; 여기서 실패(^^)한 프로젝트, “사랑의 경제학”(협력하는 경제, 따뜻한 경제는 가능한가?)도 실은 그런 욕심의 결과였다. 이제 구조와 개인을 어설프게나마 만나게 할 때가 되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우리 현실에서 가장 분명하면서도 해명하기 힘든 현상이 이른바 “88만원 세대”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현상의 뿌리에는 “세대간 착취”가 도사리고 있다. 내 자식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게 결국 다음 세대 대부분을 착취하는 걸로 귀결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기성 세대가 최선을 다한 결과가 결국 우리 아이들 세대 전체를 착취하고 있는 거라면 그 얼마나 끔찍한가? 불행하게도 그것이 실제 상황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amp;nbsp;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웬만해서 빠져 나갈 수 없는 미로에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 있다. 혹시 내가 그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싶을 때, 자문해봐야 할 질문은 이렇다.&amp;nbsp; “남이 다 하면 나도 따라 할 수 밖에 없다”(공포), 그리고 “남이 다 안 하는 경우 나만 하면 ‘대박’이다”(탐욕). 이 두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이를테면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바로 사교육이 그렇다. 그리고 부동산(주식)에 대한 우리 태도도 비슷하다. 남들이 다 과외시키는데 우리 애만 마냥 놔둘 수 없고, 남들이 다 빚내서 집사는데 나만 유유자적, 안빈낙도 하다간 영원히 셋방살이 신세일 거 같고, 반대로 남들이 다 안 한다면 어디 값싸고 좋은 과외선생이나 잘 나갈 땅이 없나, 기웃거리는 우리는 바로 그 함정에 빠진 것이다. 모름지기 투기란 죄수의 딜레마가 위력을 발휘하는 게임이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그런 투기의 결과로 사교육과 부동산 가격이 올라간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 게임은 아주 희귀한 예외를 빼곤 백이면 백 부자들이 이긴다. 때론 지배계급이 처음부터 그런 게임을 설계할 수 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대표였던 졸릭(Zollick, 지금은 세계은행 부총재)의 “경쟁적 자유화”는 바로 이 죄수의 딜레마를 응용한 것이었고 김현종은 부처님 손바닥안의 손오공처럼 한미 FTA를 추진했다(“남들이 안 하면 미국 시장을 선점”해야 하고 “남들 다하는 데 우리만 FTA 후진국일 수 없다”는 정부의 논리를 상기해 보라).&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집값과 땅값이 하늘로 치솟고 과외비에 허리가 휜다. 보릿고개가 사라진지 이미 오랜데, 우리 아이들이&amp;nbsp; 더 절망적인 건 실제론 대부분 이길 가망이 없는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내 아이만은 그런 함정을 신묘하게 비켜 나갈 것이고 그러면 ‘대박’이라는 황당무계한 낙관이, 아무리 밤을 새 일해도 집을 살 수 없고 ‘신의 직장’에만 목을 매는 상황을 만들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이건 분명히 “세대간 착취”다. 우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까지 누려야 할 자연을 파괴하는 “4대강 사업”만 미래를 착취하고 있는 게 아니다. 말하자면 이명박대통령만 욕할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의 근시안적 경쟁이 끝없이 끌어 올리고 있는 집값을 아이들이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단 1점에 목을 매게 하는 입시의 가격은 또 어떤가.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우리 모두 스스로 매일 한 삽씩 절망의 늪을 파면서 내 아이만은 늪 밖에서 승리의 열매를 맛볼 수 있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낙관이 결국 우리 아이들을 착취하고 있다. 진단이 이렇다면 답도 간단하다. 게임이론으로 말하자면 ‘죄수의 딜레마’를 ‘사슴사냥게임’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고 현실로 말하자면 지금의 무한경쟁에서 다 같이 빠져 나오자고 합의하면 된다. ‘사교육 금지’, ‘부동산 투기 금지’에 마음을 모을 때만 비로소 이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 홀로 그럴 수 없다는 이유로 지는 게임을 계속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말 그대로 “88만원 세대”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투기의 미몽에서 얼마간 벗어난 지난 지방선거와 재보선은 우리 스스로 비춘 한줄기 빛이다. 물론 빛이 보였다고 해서 출구가 열리는 건 아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x;&quot;&gt;거시정책과 투기 &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같은 사안을 놓고 보수는 개인을 탓하고 진보는 사회적 구조를 들이댄다. 이 기준에 비춰 본다면 위에서 나는 지금 보수주의적(!) 입장에서 문제를 진단한 것이다. 개인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게임이론의 틀로 설명하면 스스로 갑갑해진다. 우리 모두 각성하면(“깨어 있는 시민”만 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사실도 현실에서 실천하기론 지난하기 이를 데 없다. 모든 개인은 사회 속에 존재하고 게임의 구조가 그런 사회를 직접 설명해주는 건 아니다(20여년 전 처음 게임이론을 만났을 때 나는 후배에게 “역사는 게임이 아니”라고 자못 단호하게 진단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진보건 보수건 재벌들의 수출이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amp;nbsp; 수출이 늘어야 성장률이 높아지고 그래야 88만원 세대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보수주의의 가설을 누구나 얼마간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그런 집단 사고(경로의존적 사고, 또는 현상유지 편향)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우리의 거시지표가 그 결과이다.&amp;nbsp; 미국이 작년에 6천억 달러 규모의 제2차 양적 완화(통화증발)을 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를 향해서 노골적으로 통화절상 압력을 가해도 원화는 꿋꿋하게 고환율을 유지했다. 거의 모든 주요국의 통화 가치가 올라간 가운데 대달러 원화 가치는 2007년말 대비 여전히 20% 정도(실질로는 17% 가량) 낮아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갈 곳 없는 세계의 돈이 아시아의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으로 몰려 들었는데도 환율이 그 상태를 유지했다는 건 한국은행이 달러당 1100원 선에서 무제한으로 달러를 사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그 액수만큼 시중에 원화가 풀린다. 물가안정이 지상의 목표인 한은은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서 그 돈을 거의 다 거둬들였다(이른바 불태화 정책인데 1997년 외환위기의 교훈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상대적으로 값싸진 우리 물건은 수출이 잘 될 것이다. 도요타의 리콜사태부터 최근의 지진까지 일본의 불행 역시 여기에 일조를 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한편 국채(통안증권)를 사들인 은행들은 자산이 증가했으므로 대출을 늘릴 여력이 생겼다. 그러나 떼어먹힐 걱정이 거의 없는 안전한 대기업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흘러넘친다.&amp;nbsp; 우리 기업의 90% 이상의 숫자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투자할 여력도 없고, 투자해봤자 하청단가 인하로 생산성 향상분을 고스란히 빼앗긴다. 그 결과가 시도 때도 없이 휴대전화에 뜨는 ‘값싼 대출’ 메시지이다. 넘쳐나는 돈을 가계에 빌려 줘야 은행이 살 수(평균 수익률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로 더 없이 부풀어 오른 가계부채는 지금도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홈페이지에 “물가안정- 한국은행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입니다”라고 내건 한은이 물가가 4%를 넘나드는 데도 금리를 사실상 동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외적으로 금리를 올리면 환율 관리가 더 어려워진다는 점도 있을 테지만 국내에 부동산 거품이라는 시한폭탄이 또아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기실 이런 거시정책은 이명박 정부만 추구한 것이 아니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2000년대는 세계적 부동산 붐이 있었고 우리 사회에선 더욱 더 그랬다. 우리는 이런 구조 속에서 위에서 말한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사회의 위쪽으로 돈이 몰리게 하는 환율과 금리 정책이 낳은 통화 홍수를 부동산과 주식 투기가 흡수하는 구조였다. 대세에 뒤처지면 안된다는 공포와 나만은 대박을 칠 거라는 탐욕이 우리 스스로 그런 구조를 용인하고, 나아가서 부추겼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그러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한국 부자들의 “땅짚고 헤엄치기”도 위협했다. 거품이 낄대로 낀 부동산 시장이 돈을 흡수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대세 하락기”란 이런 심리를 표현한다. 투기의 정신적 고향인 월스트리트가 초토화하는 걸 보면서도 투기에 목을 맬 만큼 우리의 심장이 튼튼하지는 않다. 하여 보수주의적 주류경제학의 공적 1호인 인플레이션이 현실이 되고 있는데도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릴 수 없는 상황이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그래서 간단하다. 부동산 거품의 파국을 임기가 끝날 때까지 막아야 한다. 공급 쪽에서 파산의 위기에 빠진 건설회사에 일단 대출을 연장해주고(이른바 “대주단 협약”) 나아가서 일감을 마련해 줘야 하니 4대강 사업이 절실하다. 한편 팔리지 않을 건설투자에 돈을 댄 금융회사도 망하면 안된다. 부실화한 저축은행의 목숨을 어떻게든 부지시켜야 하니 온갖 편법이 다 등장하고 있다(은행들의 ‘자발적’ 민간 구제금융). 나아가서 지난 정부가 채워 놓은 부동산 투기 억제 온갖 차꼬도 다 풀어야 한다. “내가 해 봐서 다 아는” 대통령의 경험이 위력을 발휘하게 된 이유이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x;&quot;&gt;&lt;strong&gt;사회구조와 우리들의 행동&lt;/strong&gt;&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이명박정부 경제정책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대기업 수출의 증가만이 우리가 살 길이고 그래야 우리의 삶이 낳아질 거라는 주장은 이미 15년 전 경부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상류의 저수지가 가득 채워지면 그 물이 아래로 흘러넘쳐 우리 모두 행복해질 거라는. 이른바 적하효과(trickle down effect)는 없어진지 오래다. 투기라는 메커니즘은, 4대강 사업이 스스로 내세운 것처럼 상류의 “물통을 더 빨리 키운다”. “부자 되세요”라는 낙관적 구호가 웅변한, 그리고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극단적 경쟁이 어우러진 투기경제(조금 우아하게 말한다면 “자산주도경제”)는 위에서 보았듯 그들의 물통을 늘리는 데 우리가 적극온 몸으로 일조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혹시 돈이 넘쳐나서 문제가 된다면 외부로 빼돌리면 그만이다. 이미 글로벌 기업이 된 재벌들은, 하청 중소기업이 다 망한다 하더라도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부품을 조달하면 되고 투기경제 속에서 개인적으로 살아 남기 위해서 대기업 노동자들 역시 한 배를 탔다. 노동계급의 연대란 상투화한지 이미 오래 된 집회에서 나오는 구호일 뿐이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구조는 행위 패턴을 낳고 생존을 위해 매달린 그 행위가 다시 구조를 강화시킨다. 세계금융위기는 그 구조가 위기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미 보여주었다. 이 구조는 지난 30여년간 세계 전체에 새겨진 것이다. 케인스의 “소득재분배”(실제 케인스가 그렇게 단순하진 않지만)를 넘어서 “자산재분배”의 거시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하고, 나아가서 우리의 능력 바깥에 있는 세계, 또는 지역적 위기의 재발에 대비해야 한다.&amp;nbsp;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부동산이나 교육과 같은 자산의 가격이 서서히 떨어지도록 만들고 개별 경쟁으로 전체가&amp;nbsp; 위기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자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해야 한다. 경제학이 새삼스럽게 지난 50년간 호들갑을 떤 ‘공유지의 비극’을 인류는 항상 극복해 왔다. 가장 추상적인 수준에서 현재의 위기가 ‘보이지 않는 손’이 아예 없거나, 혹시 있더라도 기능부전에 빠졌기 때문(스티글리츠)이라면 해답도 간단하다. 인류 역사 상 우리가 절멸하지 않고 살아남게 했던 그 비결을 되살리면 된다. 경쟁이 아닌 협력이 그 답이다. 전 인류가 모두 걸려 든 “기후변화”와 같은 사회적 딜레마의 해결 방식도 똑같다. 물론 딜레마라는 말이 그대로 표현하듯 그 실천은 지극히 어렵지만 말이다.&amp;nbsp;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너무 급작스레 현실로 돌아온 질문이지만, 앞으로 1년 6개월여 우리를 사로잡을 정치일정은 우리를 이런 해답 쪽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일까? 박근혜씨야 그렇다치고 과연 현재의 야당연합은 이런 구조와 행위를 넘어서 희망의 세상으로 나아가게 할까? 지금까지 말한 위기의 구조를 초헌법으로 만드는 “거대경제권과의 FTA&quot;에 찬성하면서 복지(재분배)로 희망을 만들겠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자기의 순수를 지키기에도 역부족이어서 오히려 현실 정치를 외면하고 있는 ‘리얼 진보’가 그 희망일까? 협력의 원리를 손에 잡히는 정책으로 구현하는 것이 보수와 진보를 넘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깨어있는 시민이 되려면 눈부터 떠야 한다. 위기의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임금의 나체를 맨 눈으로 보고 ”임금이 벌거벗었다“고 말해야 한다. 구조를 바꾸기 위해선 행동을 해야하고 모두 행동에 나서도록 하기 위해선 구조를 조금씩이라도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ue, 10 May 2011 17:00:26 +0900</pubDate>
                        <category>정태인</category>
                        <category>경제</category>
                        <category>투기</category>
                        <category>시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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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88만원 세대</title>
            <dc:creator>칼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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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quot;right&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219/176/a44c988aa8468d2a7d754594a8efab89.jpg&quot; alt=&quot;정태인1[1].jpg&quot; width=&quot;270&quot; height=&quot;600&quot; style=&quot;&quot; /&gt;



&lt;/p&gt;&lt;p&gt;&amp;nbsp;&lt;/p&gt;&lt;p align=&quot;right&quot;&gt;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뱅뱅 머릿 속을 맴돌 뿐,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예컨대 “그/그녀가 왜 나를 떠났을까”같은 종류다. 아무리 골몰해 봐야 답이 없을 것이라거나, 기껏 답이라고 내봐야 틀릴 수 밖에 없는 문제들을 나이가 들만큼 들어서야 분간하게 됐지만, 우석훈박사가 영웅처럼 제기하고 돈키호테처럼 답(“짱돌을 들으라”니^^) 을 낸 “88만원 세대”가 그런 요령부득의 화두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요즘 내 결론은 “세대간 착취”이다. 내 자식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게 결국 다음 세대 대부분을 착취하는 걸로 귀결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난 자본가가 노동자를 괴롭히려고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이윤극대화 방정식을 풀다 보니 그게 결국 착취에 이르른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기성 세대가 최선을 다한 결과가 결국 아이들 세대 전체를 착취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깨달음이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우리가 결코 빠져 나갈 수 없는 미로에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 있다. 혹시 내가 그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싶을 때, 자문해봐야 할 리트머스 시험지는 이렇다. “남이 다 하면 나도 따라 할 수 밖에 없다”(공포), 그리고 “남이 다 안 하는 경우 나만 하면 ‘대박’이다”(탐욕). 이 두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바로 사교육이 그렇다. 그리고 부동산(주식)에 대한 우리 태도도 비슷하다. 남들이 다 과외시키는데 우리 애만 마냥 놔둘 수 없고, 남들이 다 빚내서 집사는데 나만 유유자적, 안빈낙도 하다간 영원히 셋방살이 신세일 거 같고, 반대로 남들이 다 안 하는 경우 어디 값싸고 좋은 과외선생이나 잘 나갈 땅이 없나, 기웃거리는 우리는 바로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죄수의 딜레마는 “김승옥의 염소“보다 더 힘이 세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두 게임의 결과로 사교육과 부동산 가격이 올라간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 게임은 아주 희귀한 예외를 빼곤 백이면 백 부자들이 이긴다. 때론 지배계급이 처음부터 그런 게임을 설계할 수 있고 어쩌다 보니 그런 상황이 된 경우 부자들은 그야말로 횡재한 것이다. 졸릭(Zollick)의 “경쟁적 자유화”는 죄수의 딜레마를 응용한 것이고 김현종은 부처님 손바닥안의 손오공처럼 한미 FTA를 추진했다(앞에서 말한 리트머스 시험지를 적용해 보라).&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집값과 땅값이 하늘로 치솟고 과외비에 허리가 휜다. 보릿고개가 사라진지 이미 오랜데, 우리 아이들이&amp;nbsp; 더 절망적인 건 대부분 아무도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내 아이만은 그런 함정을 신묘하게 비켜 나갈 것이고 그러면 ‘대박’이라는 황당무계한 낙관이, 아무리 밤을 새 일해도 집을 살 수 없고 ‘신의 직장’에만 목을 매는 상황을 만들었다.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그래서 분명히 “세대간 착취”다. 우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까지 누려야 할 자연을 파괴하는 “4대강 사업”만 미래를 착취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근시안적 경쟁 탓에 이미 올라버릴대로 오른 집값을 아이들이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단 1점에 목을 매게 하는 입시는 또 어떤가. &lt;/span&gt;&lt;/p&gt;&lt;p&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우리 모두 매일 한 삽씩 절망의 늪을 파면서 내 아이만은 늪 밖에, 아름다운 고층 빌딩에 살 수 있을거라는 터무니없는 낙관이 우리 아이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게임이론으로 말하자면 ‘죄수의 딜레마’를 ‘사슴사냥게임’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고 현실로 말하자면 지금의 무한경쟁에서 다 같이 빠져 나오자고 합의하면 된다. ‘사교육 금지’, ‘부동산 투기 금지’에 마음을 모을 때만 비로소 이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 홀로 그럴 수 없다는 이유로 지는 게임을 계속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말 그대로 “88만원 세대”일 수 밖에 없다. 투기의 미몽에서 얼마간 벗어난 지난 지방선거와 재보선은 우리에게 비춘 한줄기 빛이다. &lt;/span&gt;&lt;br /&gt;&amp;nbsp;&lt;/p&gt;&lt;p&gt;&lt;br /&gt;&amp;nbsp;&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06 May 2011 14:26:48 +0900</pubDate>
                                </item>
                <item>
            <title>MB노믹스와 폭탄 떠안기</title>
            <dc:creator>칼라</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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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quot;right&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940/174/2fb59e1f0adc7fca2fa65c280ffae13f.jpg&quot; alt=&quot;정태인1[1].jpg&quot; width=&quot;270&quot; height=&quot;600&quot; style=&quot;&quot; /&gt; &lt;/p&gt;
&lt;p align=&quot;right&quot;&gt;&lt;strong&gt;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amp;nbsp; 일주일 남은 보궐선거는 내년의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일테니 각 당이 사활을 거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들로 보인다. “나만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내가 역사의 오명을 뒤집어 써야 한다”는 경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amp;nbsp;&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그런 면에서 이명박대통령은 천운을 타고 태어난 사람이다. 초기의 노무현 탓을 넘어서 이제 모든 문제는 바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할 충분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하여 아무도 ‘보잉 747’(7% 경제성장, 1인당 GDP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이 어디로 갔느냐고 묻지 않는다. 미국은 금융위기의 수렁에서 허우적 거리고 몇몇 유럽국가는 재정위기를 맞았다. 이웃 일본은 지진에 방사능 위기까지 맞았다. 전 세계가 맞고 있는 초유의 위기를 홀로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대통령을 모셨으니 우리는 그 얼마나 다행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그런 대통령도 현재의 물가문제에 관해선 불가항력(“beyond control&quot;이란다^^)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물가 불안의 밑바탕에는 2008년 이후 전 세계가 돈을 푼 결과,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국내 농산물 가격 역시 바깥에서 흘러 들어온 구제역 바이러스 때문이니 모두 대통령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한번 불가항력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의 이미지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그의 ‘성공’ 비결은 “내가 해봐서 아는” 수출과 건설이다. 미국이 작년에 6천억 달러 규모의 제2차 양적 완화(통화증발)을 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를 향해서 직접 통화절상 압력을 넣어도 원화는 꿋꿋하게 고환율을 유지하고 있다. 거의 모든 주요국의 통화 가치가 올라간 가운데 대달러 원화 가치는 2007년말 대비 여전히 20% 정도(실질로는 17% 가량) 낮아진 상태이다. 세계의 돈이 아시아 주식과 채권을 향해 몰려 들었는데도 그렇다는 것은 한은이 1100원 선에서 무제한 달러를 사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그 액수만큼 시중에 원화가 풀린다. 한은은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서 그 돈을 거의 다 거둬들였다(불태화 정책). 국채를 사들인 은행들은 자산이 증가했으므로 대출을 늘릴 여력이 생겼다. 그런데 대기업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흘러넘친다. 결국 가계 대출이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여러분의 휴대전화에 수시로 들어오는 ‘값싼 대출’ 메시지는 이런 거시정책의 결과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홈페이지 대문에 떡 하니 “물가안정- 한국은행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입니다”라고 내건 한은이 그 물가가 4%를 넘나드는 데도 금리를 사실상 동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방 빼고 거의 모든 일을 “내가 해봐서 아는” 대통령이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은 건설이다. 해서 단군 이래 최대의 자연파괴를 조기에 달성하고 숨 돌릴 틈도 없이 20조원 규모로 강변에 대규모 리조트와 아파트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작금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위기를 막기 위해서도 건설사에 일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도 중대형 아파트 위주로 미분양이 널렸는데 또 공급을 늘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세자금이든 매입자금이든 더 많은 돈을 가계에 빌려주어 수요를 늘리면 된다. 따라서 LTV나 DTI 등 모든 부동산 규제를 풀어야 한다. 금융시장과 실물시장의 균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으려면 한은의 금리는 거품을 터뜨리지 않기에 충분할 만큼 낮아야 하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고환율 정책의 핵심은 내수부문에서 세금을 거둬 수출부문에 보조금을 주는 것이다. 달러매입과 흑자로 넘쳐나는 돈은 다시 부동산 부문에 빌려줘서 고리를 뜯는다. MB노믹스의 귀결은 수출부문과 내수부문의 양극화, 그리고 자산거품과 가계부채라는 양대 폭탄이다. 이 정부의 임기와 함께 시작된 세계적 대침체(Great Recession)라는 조건이 아니었다면 MB노믹스는 엄청난 투기거품을 일으켰을 것이고 이미 그 폭탄은 터졌을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참여정부는 처음 1년 동안 국민의 정부가 떠넘긴 신용카드 위기를 막는 데 급급했다. 내년 대선의 승리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핵폭탄을 인수하는 일이다. 정권이 문제가 아니다. 여야의 지도자들 모두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그리고 차기 정권의 성공을 원한다면 당장 4대강 사업 등 모든 토목공사를 중지하고 임기 내에 자산거품 문제를 해소하라고 한 목소리로 대통령에게 외쳐야 한다. 복지고 뭐고 그 다음 일이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Sat, 23 Apr 2011 15:47:03 +0900</pubDate>
                        <category>정태인</category>
                        <category>경제</category>
                        <category>투기</category>
                        <category>거품</category>
                        <category>4대강</category>
                        <category>토목</category>
                                </item>
                <item>
            <title>불신지옥</title>
            <dc:creator>muk</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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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style=&quot;line-height: 2;&quot; align=&quot;righ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lt;img src=&quot;http://www.jinbocolor.tv/files/attach/images/127518/615/174/8dbe218ef8fa342f207448a7654c1321.jpg&quot; alt=&quot;정태인1[1].jpg&quot; width=&quot;270&quot; height=&quot;600&quot; style=&quot;&quot; /&gt;



&lt;/span&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2;&quot; align=&quot;righ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trong&gt;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lt;/strong&gt;&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lt;/span&gt;&lt;p style=&quot;line-height: 2;&quot;&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가끔 지하철에서 만나는 열혈 기독교인의 얘기가 아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이미 
“불신지옥”이다. 지난 3월 27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국제교육협의회의 2009년 조사(“국제시민의식 교육연구”)를 바탕으로 36개국 청소년의 
“사회적 상호역량” 지표를 계산한 결과 한국은 36개국 중 35위를 차지했다. 특히 “관계지향성”과 “사회적 협력”부문의 점수가 최하위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참여국 평균의 1/3 수준인 20%에 머물렀고 학교를 신뢰하는 아이들도 45%(평균 75%)에 
불과했다.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전 세계 중학교 2학년 학생 14만 600명의 설문 조사 결과인데 열다섯살 가량의 이 아이들은 “국제학업성취도 
조사”(PISA)의 대상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3년마다 하는 이 조사에서 매우 뛰어난 성적(세번에 걸쳐 평균 2위)을 차지했다. 
지식은 많이 쌓았지만 협력에는 ‘젬병’이라는 얘기다.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980년부터 5년마다 시행하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 한국은 일반적 신뢰(&quot;남을 얼마나 믿느냐“)로 보면 조사국 평균 이상이었다. 그러나 
80년부터 2000년까지의 변화를 보면 10% 이상 신뢰가 떨어져서 영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불신이 쌓이는 나라로 나타났다. 이번 
아이들 조사까지 합쳐 보면 앞으로 우리는 더 끔찍한 불신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신뢰(trust), 그리고 그 결정체인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좋은 민주주의(퍼트넘, 뉴튼, 울쿡), 개인적 행복(헬리웰), 
낙관과 관용(우슬레이너), 경제성장(낵과 키퍼), 민주주의의 안정성(잉겔하트)에 필수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 놓았다. 경제성장율이 떨어지고 
사회는 갈등으로 가득차고, 갈수록 살기 팍팍해져서 급기야 청소년 자살율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것 모두 다 남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신뢰가 협력을 낳고 협력은 사회적 딜레마 해결의 필수 요소다. 모든 사회적 딜레마 게임(죄수의 딜레마, 사슴사냥게임, 
치킨게임)에서 협력은 경쟁보다 우월한 결과를 낳는다. 신뢰란 무임승차, 즉 기회주의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거의 100% 상대방이 
무임승차(배반)할 것이라고 예측한다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나 역시 무임승차를 할 수 밖에 없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착한 사람을 
바보로 취급하게 되었다. 세상은 이기와 경쟁으로 가득차고 사회 전체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아이들부터 보자면 무엇보다도 경쟁 교육을 들 수 있다. 매년 6-70만명의 아이들 이마에 등수를 불로 새기는 교육에 신뢰와 협력이 끼어들 틈은 
전혀 없다. 남들이 과외시키니까 나도 시켜야 하고 남들이 안 해도 내 아이의 등수를 올리기 위해 과외를 시키는 현실은 정확히 우리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인간은 모두 배반을 택할 수 밖에 없다. 무려 12년에 걸쳐 우리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들여 아이들 몸에 기회주의를 새기고 있는 것이다.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부자 되세요”라는 낯부끄러운 말이 TV를 타고 재벌회사가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며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고위 공직자 청문회마다 부동산투기와 탈세, 병역 기피가 문제되는 사회에서 어떻게 신뢰와 협력이 뿌리를 
내리겠는가.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아이들 등수부터 없애야 한다. 등수없는 평등교육, 토론 위주 협력교육을 하는 핀란드가 피사에서 매번 1등을 할 뿐 
아니라 대학경쟁력 1위와 첨단 클러스터를 자랑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잭과 낵(Zak &amp;amp; Knack)은 교육과 함께 소득재분배, 
그리고 결사의 자유가 신뢰를 쌓는 첩경이며 결국 사회의 발전을 낳는다는 것을 실증했다. 현 정부 정책의 정반대로 가야 우리 모두 행복질 수 
있다. 신뢰를 증가시키는 옥시토신을 밥처럼 먹을 수야 없지 않은가. (관련 자료는 &lt;/span&gt;&lt;a href=&quot;http://mojiry.khan.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http://mojiry.khan.kr/&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quot;&gt; 에)&lt;/span&gt;&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Wed, 20 Apr 2011 07:06:15 +0900</pubDate>
                        <category>경제</category>
                        <category>칼라TV</category>
                        <category>정태인</category>
                        <category>청소년</category>
                        <category>신뢰</category>
                        <category>교육</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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