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 파산 1년,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정태인(경제평론가)
1. 패닉은 막았지만 문제는 그대로
1) G20, 경제학을 모두 동원해서 패닉을 진정시키다
“현재의 위기는 약 10년마다 오는 산업순환 상의 위기에, 시장만능론이라는 30년짜리 지배 이데올로기의 위기, 그리고 100년에 한번쯤 오는 패권국가의 위기가 겹쳐진 것이다”(정태인, 경향신문, 12월 3일자, 경제칼럼) 말하자면 ‘3중의 위기’인 셈인데 1929년 즈음의 대공황기가 이에 해당하는 유일한 역사적 사건이었을 만큼(물론 패권국가 위기의 위치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지만) 우리는 지금 좀처럼 체험하기 힘든 역사의 고비에 서 있다. 당시에 나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지만) 금융위기에 대한 해법으로는 파생상품규제, 시장만능론의 폐기와 새로운 경제이론의 수립, 그리고 글로벌 불균형의 제도적 시정을 해법으로 제시했다(경향신문 1월 12일자).
리만 브라더스 파산 이후 1년이 지났다. NBER에 따르면 이제 미국은 3년째 침체에 빠져 있다. 지난 4월의 G20은 위기를 헤쳐나갈 방향을 제시하리라 기대를 모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기껏 조세천국의 규제와 헷지펀드의 감독1), SDR의 확대와 IMF 강화, 5조 달러 규모의 경제부양을 약속했을 뿐이다.
물론 전 세계가 이렇게 유동성 공급(통화주의의 대부 프리드만의 말대로)과 재정확대(케인스의 말대로)를 동시에 신속하게 한 사례는 없다. 지난 30년간 서로 으르렁대던 경제학의 양 계파의 처방전을 동시에 시술한 것이다. 또한 중국이 주장한대로 IMF가 채권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SDR 등 재원을 확대한 것은 문제를 약간 덜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2) 흑자국들이 IMF 채권을 산다는 것은 그에 비례해서 달러화 절하의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과 유럽이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는 의결권(심지어 미국은 사실상의 거부권도 가지고 있다) 역시 어느 정도는 조정되어 그동안 IMF가 고금리와 긴축재정을 통한 구조조정을 강요해서 결국 선진국의 금융대자본가들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반영해 온 것도 어느 정도는 시정될지 모른다.
지난 3월 저우사요찬 중국 인민은행 총재의 SDR 초국가 준비통화론과 오바마, 가이트너의 중국 환율조작론은 격렬한 대립을 예고했지만 서로를 무서워 한 양국은 결국 SDR 확대로 미봉했고 흑자국의 재정확대정책3)과 미국의 저축율 상승 등으로 정책 공조를 약속한 셈이다.
그 결과 세계경제는 뚜렷한 경기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 세계기구든 아니면 선진국의 재무부든 낙관적인 전망을 내 놓고 있으며 이제는 출구전략의 시점을 점치기에 바쁘다.
내 보기에 위에서 말한대로 금융규제의 강화와 자본시장 통제, 그리고 국제통화체제의 재편에 합의하지 않는 한 세계경제가 갈 길은 원래 두 갈래였다. 첫째는 고전적인 부채-디플레이션 공황4), 둘째는 부채-버블 시나리오로 시차를 둔 위기이다. 첫째 길은 전 세계적인 유동성공급과 확대재정정책으로 일단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의 부동산시장과 파생상품시장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만일 어느 순간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면 작년의 상황은 되풀이될 수 있다. 이 때에도 금년과 같은 정책공조가 순조롭게 이뤄지리라 예상하기는 어렵다.
다음으로는 두 번째 길인데 현재의 자극정책이 세계적인 경제규모의 확대와 투자확대로 이어지지 않는 한 부동산과 주식의 버블폭등5)만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자산버블을 막으려고 이자율 인상 등 긴축정책을 행한다면 순식간에 버블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버블을 꺼뜨릴 것이냐일텐데, 현재의 경제학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6) 패닉은 진정시켰지만 바야흐로 전 세계 버블이 도사리고 있으며 버블을 막기 위한 금융규제와 자본시장 통제의 시점은 이미 놓쳤다.
2) 달러체제의 위기, 제2의 베르사이유협약의 귀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1971년 이래의 변동환율제-자본자유화 이후의 달러체제이다. 이것이 앞의 두 갈래 길 어디에서나 겹쳐서 만날 수 있는 세 번째 위기다. 기축통화를 가진 미국은 막대한 특권(시뇨리지)을 누려 왔다. 예컨대 미국 재무성 증권을 연방기금금리 정도 받고 빌려주기 위해 단지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 만으로도 막대한 이자 수입이 생기며, 기축통화라는 것 만으로도 외환위기를 맞을 염려가 없으니 그만큼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케인스가 지적했듯이 그것은 저주받은 축복(mixed blessing)이었다.
기축통화국은 세계의 유동성을 공급해야 하고 그러려면 경상적자를 유지해야만 한다(트리핀의 딜레마, 실제로는 달러의 고평가를 통해 적자가 실현되며, 흑자가 나는 경우에도 값싼 원조로 유동성을 공급할 수도 있다). 물론 적자가 쌓여도 기축통화국이 걱정을 할 일은 별로 없다. 어차피 흑자는 미국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50-60년대의 유럽광 일본이 벌어들인 달러, 70-80년대 및 최근 산유국의 오일달러, 그리고 현재 중국 등 아시아국가의 흑자는 결국 재무성증권으로 바뀌어 그들의 외환보유고로 쌓일 뿐 달러는 미국으로 향했다. 그것은 1971년 닉슨의 금태환 정지로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했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달러환류 현상은 둘리 등(Dooley et al)의 ‘브레튼우즈2’, 퍼거슨의 ‘차이메리카’의 논리에 힘입어 글로벌 불균형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합리화되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 기업, 가계에 이 현상은 예산연성화(바로 소련을 무너뜨렸던 그 요인)와 마찬가지였고 각 주체의 빚은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 버냉키는 이 모두가 동아시아 등 흑자국의 저축광신(saving glut)7)과 환율조작 때문이라고 흑자국 책임론을 폈지만8) 서머스의 표현대로 그것은 금융테러에 기초한 균형(balance on financial terror), 즉 미국이 망하는 금융테러의 위협 때문에 유지되는 기묘한 균형일 뿐이다. 언젠가 세계 각국이 달러 가치 하락 때문에 재무성 증권을 팔기 시작하기만 해도 순식간에 붕괴될(금융테러를 감수하고서라도) 그런 위태로운 균형이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불균형을 더욱 증폭시켰다. 중국과 한국 등이 외환시장의 변동성에 대한 자기 보험용으로 외환보유고를 극적으로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90년대의 IT호황, 그리고 2000년대의 부동산호황의 기초도 흔전만전 넘치는 달러에 기초했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이들 돈으로 장사를 하는 월스트리트를 위해 파생상품 규제 등 각종 금융규제를 풀었다.
현재의 금융위기의 뿌리는 이렇게 거대 불균형에 닿아 있고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시장은 더 큰 규모의 제2의 금융위기라는 폭력으로 문제를 조정할지도 모른다. 1차 세계대전을 겪고도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지 못한 채 금본위제 하의 시장이 모든 걸 해결하리라고 억지를 부린 세계는 결국 2차대전을 맞고 말았다. 지금의 회복세는 말하자면 1920년대 전간기의 불길한, 그러나 달콤해서 모든 문제를 잊게 만드는 마약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4월 런던에서 열린 G20은 그렇다면 분명 브레턴우즈협약은 아니고 아마도 베르사이유협약(1916)에 해당할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이론 중 해법을 찾자면 스티글리츠의 “국제통화개혁”이나 데이빗슨의 “국제통화청산단위(International Money Clearing Unit)”와 같은 케인스주의 구상 정도일 것이다. 이 두 개혁안은 흑자국의 개도국 지원 규정(데이빗슨), 흑자분에 대한 50% 과세(스티글리츠), 그리고 비대칭적 세계통화의 창설이라는 점에서 케인스의 구상을 반영하고 있다.
진정한 문제는 이들 구상이 사실상 케인스와 마찬가지로 자본시장의 통제와 관리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데 있다.9) 물론 이것은 월스트리트 등 세계적 금융대자본(haute finance)의 이익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며 결국 이 때문에 세계가 완전히 망하는 지경(즉 금융테러상황)이 아니고서는 어느 정부나 기업가도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기실 루스벨트가 자신의 초기 정책을 포기하고 29년 대공황이 잠깐 진정된 후(실은 3년간 5번의 주가급등이 있었다) 32년에 은행파산으로 악화된 이후에 뉴딜을 들고 나온 것은 그제서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금융대자본과 맞서 싸울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바마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 오바마는 지금 케인스의 처지에 놓여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적자문제를 해결하는 데 케인스의 청산동맹만큼 유리한 안은 없다. 문제는 루스벨트의 브레턴우즈체제가 달러 기축통화를 확정하는 것인 반면 이번의 개혁은 기축통화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며 미국 국민 모두가 반대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서머스와 가이트너 등 월가의 자식들을 불러 들임으로써 이미 개혁의 실종을 예고한 바 있는 오바마가 지금껏 국제금융 문제에 관해 보여준 행태는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신자유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3) 아시아 지역통화체제는 수립될 것인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속수무책, 아무 일도 못하는 건 아니다. 80년대 플라자협정이나 루브르 협정과 같은 국제공조(실상은 환율전쟁과 금리 전쟁 속에서 일본이 굴복한 것이다)의 움직임과 함께 지역화(regionalization)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신임 총리가 될 것이 확실한 하토야마는 최근의 기고문에서 미국식 세계화를 거부하고 AMF-아쿠(ACU, Asian Current Unit)를 통한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밝혔다. 이는 저우샤오찬 총재의 제안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고 또한 금융위기를 계기로 강화된 치앙마이협약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케인스나 스티글리츠 역시 각국의 이해가 격렬하게 맞부딛히는 현실을 반영하여 새로운 통화체제에 찬성하는 국가들 중심으로 회원제 형식으로 시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다행히 중국-일본-한국-아세안은 서로 물고 물리면서 경상수지가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동의 이익(금융위기의 회피가 그 무엇보다도 우선일 것이다)을 기초로 케인스형 지역통화체제를 만든다면 이미 비슷한 제안을 한 러시아의 메드베데프도 솔깃할 것이다.
달러-ACU-유로의 삼각 바스켓에 의한 환율 조정, 그리고 과감한 자본통제와 금융규제가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예컨대 전 세계가 동시에 상당한 비율의 토빈세와 케인스세(증권거래세) 및 탄소세를 부과하고 그 수입으로 지구온난화문제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즉 글로벌 공공재를 공급하는 데 사용한다면 이 세상은 훨씬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미국과 금융자본이 끝까지 기득권을 주장한다면 아시아에서 먼저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한 때를 풍미했던 물길이 바뀐다면 그 변곡점은 주변부에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신자유주의는 이미 무너지고 있다.10) 현재는 한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다음 시대의 주역과 이념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태, 즉 위험으로 가득찬 대혼돈의 시대이다.
2. 이명박 정부의 위기대응책과 한국경제
1) 이명박 정부의 정책 - 위기대응책과 2009년 예산을 중심으로
유동성의 공급
이명박 정부의 정책의 주 항로는 ‘747’이라는 그의 경제정책 지도에 이미 그려져 있다.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끝난 시대’(스티글리츠)에 오히려 워싱턴 컨센서스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또 2008년의 금융위기는 정부의 건설투자를 극적으로 증가시켰다.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란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기조에 박정희식 토목건설정책을 덧씌운 것이다. 이미 흘러간 두 줄기 옛 노래를 리믹스한 결과는 과연 어떻게 나타날까?
한국의 금융기관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 등 CDO를 거의 취급하지 않았으므로(우리은행의 파워인컴펀드가 예외적일 정도이다) 직접 이번 금융위기의 유탄을 맞지는 않았다. 위기는 원화 가치의 폭등과 폭락이라는, 외환위기의 조짐을 보였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국내 금융기관의 외화 부채가 많은데다 수출 증대를 위해 이른바 최강라인(강만수 당시 기재부장관과 최중경 당시 기재부 차관)이 외환시장에 구두 개입을 하면서 사태를 악화시켰기 때문이었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08년 9월 12일)가 일어나자 부랴 부랴 유동성 공급 확대에 나선 정부는 당시 5.25%에 이르던 금리를 현재 2.0%까지 낮추고 달러를 공급하기 위해 미국(10월 30일), 일본 및 중국(12월 12일)과 900억 달러의 통화스왑계약을 맺었다. 또한 은행 등의 외화차입에 대해서는 정부가 총 1000억 달러규모의 지급보증을 했으며 국내적으로는 RP 재매각 및 매입(9.5조원), 국고채 매입(10.5조원), 통안증권 중도 환매(0.7조원) 등 11.2조원의 원화 유동성을 공급했다. 그 결과 2009년 6월 현재 전년 동기 대비 M1은 18.5%, M2는 9.6% 증가했다(<표1>). 아래 표는 현재 각 경제주체가 현금을 움켜쥐고 있는 한국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는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그것은 곧 자산버블의 연료가 차고도 넘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표1> 한국의 통화 및 유동성 지표
|
전년동월대비증감률(%) |
‘08.12월 |
‘09.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
M1(평잔) |
5.2 |
8.3 |
9.8 |
14.3 |
17.4 |
17.0 |
18.5 |
|
M2(평잔) |
13.1 |
12.0 |
11.4 |
11.1 |
10.6 |
9.9 |
9.6 |
|
Lf(평잔) |
10.4 |
9.2 |
8.8 |
8.4 |
7.7 |
7.3 |
p7.0 |
|
L(말잔) |
10.6 |
10.9 |
10.8 |
10.6 |
9.5 |
9.5 |
p9.9 |
* 한국은행, “2009년 6월 중 통화 및 유동성 지표 동향”
감세와 건설지출의 확대
감세는 신자유주의경제학의 고유 처방이며 이명박 대통령 후보 시절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고 정부가 들어서자 마자 시행한 정책이다. 다음은 지난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킨 감세안을 정리한 표이다.
<표2> 정기국회 통과 주요 감세 내용
|
구분 |
여야 합의안 |
|
종부세 |
*주택분 부과기준은 현행대로 6억원으로 하되 1주택보유자에 대해서는 3억원의 기초공제를 허용 *세율을 0.5~2%로 대폭 인하 *고령자와 1세대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대한 세액공제 도입
|
|
소득세 |
8~35%의 세율을 단계적으로 인하하여 2010년분 소득부터 6~33%로 각각 2%씩 인하
|
|
양도소득세 |
*9~36%의 세율을 6~33%로 3%씩 인하 *2주택 보유자에 대한 50%세율 부과를 폐지하여 6~33%의 일반적인 누진세율만을 적용하고 3주택 보유자에 대한 60%의 세율도 45%로 인하
|
|
법인세 |
현행 13-25%세율을 인하하여 10년분 소득부터 10-20%의 세율적용 |
* 진보신당 미래상상연구소 정리, 2009.4.
나아가서 정부는 개인과 법인의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중과제도(각각 법인세 30%와 양도세 60%)를 폐지하고 3주택 보유자에 대해서도 양도세 기본세율만 적용하기로 했으며(기재부, “경제활성화 지원 세제개편안”, 2009. 3) 국회는 법인에 대한 감세만 2010년까지 적용하기로 수정하여 통과시켰다.
국회 예산처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감세안은 임기 중 96조원이 넘는 세수를 줄인다.(<표3>) 내년부터 매년 GDP의 2.5% 가량의 적자 요인이 발생하는 것이다. 문제는 위기 상황에
<표3> 감세로 인해 줄어드는 세수 규모
|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합계 |
|
감세규모(조) |
6.2 |
13.5 |
24.6 |
26.0 |
25.8 |
96.1 |
* 국회 예산정책처, “ 세법개정에 따른 세수효과 측정에 관한 연구”. 2009.
서 재정지출 또한 증가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미 정부는 위기 대응책으로 유가 환급금, 유가연동 보조금 등 10조원을 지출했으며(고유가 극복 민생종합대책(2008.6)), 고유가 극복 추경 예산, 경제난국 극복 수정예산을 통해 16조원을 추가로 지출한 바 있다. 2009년 지출은 4월의 추경예산까지 합쳐서 총 302.3조원으로 2008년에 비해 17.7%를 증가시켰다(<표4>). 11)
<표4> 2009년 분야별 지출 예산 (단위:조원, %)
구분 05~08년 평균 증가율 08년 예산 09년 당초예산안 09년 수정예산안 확정 예산 R&D 12.5% 11.1 12.3(10.8) 12.3(10.8) 12.4(11.5) 산업·중소기업·에너지 1.9 12.6 13.2(5.0) 15.3(21.1) 16.2(28.5) SOC 2.3 19.6 21.1(7.9) 24.8(26.7) 24.7(26.0) 농림수산식품 4.4 16.0 16.6(4.1) 17.1(7.1) 16.7(4.8) 보건복지 11.3 67.7 73.7(9.0) 74.6(10.3) 74.7(10.4) 교육 8.9 35.6 38.7(8.8) 38.7(8.8) 38.3(7.7) 문화체육관광 8.4 3.3 3.4(3.4) 3.4(3.7) 3.5(6.7) 환경 7.8 4.5 4.7(5.6) 4.9(10.1) 5.1(14.1) 국방 8.0 26.6 28.6(7.5) 28.7(7.8) 28.6(7.3) 통일외교 13 2.8 2.9(2.2) 2.9(3.7) 3.0(5.1) 공공질서안전 7.8 11.7 12.2(4.4) 12.3(5.1) 12.3(5.6) 일방공공행정 - 45.9 47.5(3.5) 48.9(6.5) 48.7(6.1) 총지출 7.2 257.2 273.8(6.5) 283.8(10.4) 284.5(10.6)
* 기획재정부, “국가재정운용계획” 각년도. 미래상상연구소.
05년-08년의 평균 증가율과 비교했을 때 2009년 확정 예산의 분야별 증가율은 SOC(2.5% -> 26%)가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1.9% -> 28.5%)로 급격하게 증가했으며 사회분야인 보건복지, 교육 등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SOC 건설 분야의 급증은 광역경제권 선도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도로와 철도 등의 교통시설 확충이 주도했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도 저탄소 에너지 자립의 명목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들어가 있고 환경분야에는 4대강 정비사업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사실상 급증한 부분은 전부 건설 부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2009년 6월에 발표된 “4대강 살리기 마스터 플랜”은 2012년까지 본사업 16.9조원 직접연계사업 5.3조원으로 22.2조원인데 그 대부분은 준설, 보설치, 농업용저수지 하구둑 건설에 들어가서 국토부의 예산이 15.3조원을 차지하고 있다. 또 7월에 발표된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안)”은 2009년부터 1013년까지 총107.4조원을 투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10대 사업 중 탈석유. 에너지 자립 강화는 원자력 발전을, 기후변화 적응역량 강화는 4대강 살리기, 녹색국토.교통의 조성 역시 각종 지역개발 및 SOC 정책을 포함하고 있어서 상당 부분이 건설에 투입될 예정이다. 더구나 대형 토목 사업은 언제나 사업과정에서 예산이 몇 배 이상 증가한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로도 천문학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이 두 사업의 예산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12)
규제완화와 민영화
2008년 12월 “세기적 위기를 선진일류국가 도약의 기회로!”라는 장한 제목으로 발표한 “2009년 경제운용방향”의 3대 정책 방향(경기회복, 지속성장, 장기성장) 중 지속성장 항목은 ‘규제의 최소화’, ‘세율의 최저화’, ‘금융의 글로벌 스탠더드화’, ‘정부 효율 10% 제고’, 그리고 ‘공기업 선진화’이다. 사실 이런 기조는 ‘규제완화, 민영화, 감세’라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그대로 따르는 것으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하에서도 재경부 주도로 꾸준히 추진해 오던 정책인데 경제위기를 맞아 순풍(이명박 정부)에 돛을 단 셈이다.
한국의 재벌-재경부의 소원인 3대 규제완화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수도권 규제완화였다. 이명박 정부는 이 소원을 대부분 들어 주었다. 이미 참여정부 시절 형해화했던 출자총액제한제는 확실하게 폐지됐고 산업자본은 사모펀드를 통해서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으며 보험, 증권회사를 소유한 비은행 지주회사가 산업자본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금융위기로 각국, 그리고 국제기구마저 각종 금융규제를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위기를 빌미로 모든 칸막이를 없애 버렸다. 이런 기조 위에서는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인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없애기 위해 금융기관 업무 영역간 장벽을 제거하고 금융상품을 포괄 규정방식으로 전환한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2008년 촛불집회에 밀려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전기-개스 민영화를 하지 않을 것이며 의료민영화는 ‘괴담’이라고 밝혔지만 현재 재정적자의 규모는 곧 자산이 30-40조원에 이르는 네트워크 산업(전기, 철도, 수도, 개스, 우편 등)의 민영화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금년의 적자규모만 50조원이 넘는데다, 내년부터 매년 25조원의 감세 규모를 유지하고 현재 예정돼 있는 재정지출을 집행하기만 해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떠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담배세, 주세 인상을 죄악세라는 명목으로 들고 나올만큼 증세를 하기 어렵고 또한 유동성 홍수 속에서 인플레이션 정책을 쓰기도 어렵다면 이 정부가 꺼내 들 카드는 ‘공기업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민영화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의 경기에 대한 약간의 예측
금년 2/4분기부터 경제가 안정화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환율은 1200원 수준에서 안정되었고 주가는 7월말 현재 연초에 비해 40% 상승했고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도 들먹일 정도로 심리 상태가 호전되었다. 뿐만 아니라 소비심리를 보여 주는 각종 지표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고 7월에는 제조업 생산도 전기 대비 8% 증가하는 등 실물에서도 희망이 보인다. 그러나 과연 ‘출구전략’을 고민해야 할 만한 상황일까?
정부가 그릴 수 있는 어떤 시나리오도 실은 수출이 증가해야만 실현될 수 있다. 정부의 모든 정책이 사회경제의 양극화를 부추기므로 내수의 상당한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전망은 별로 없다. <표5>에서 보듯이 2009년의 수출
<표5> 한국의 수출 수입
통관기준, 억달러)
|
|
|
2008 |
|
2009 |
||||||||
|
|
|
연간 |
7월 |
1/4 |
2/4 |
3/4 |
4/4 |
|
1/4 |
2/4 |
6월 |
7월 |
|
수 출 |
|
4,220.1 |
409.6 |
994.4 |
1,144.9 |
1,150.0 |
930.7 |
|
745.6 |
911.0 |
326.3 |
327.2 |
|
|
|
(13.6) |
(35.6) |
(17.4) |
(23.1) |
(27.0) |
(-9.9) |
|
(-25.0) |
(-20.4) |
(-12.4) |
(-20.1) |
|
수 입 |
|
4,352.7 |
429.5 |
1,060.5 |
1,147.9 |
1,229.0 |
915.3 |
|
712.9 |
732.8 |
253.6 |
275.9 |
|
|
|
(22.0) |
(47.0) |
(28.9) |
(30.5) |
(42.8) |
(-9.0) |
|
(-32.8) |
(-36.2) |
(-32.9) |
(-35.8) |
주 : 1) ( ) 내는 전년동기대비 증감률(%) 자료 : 관세청
* 한국은행, 최근의 국내외 경제동향, 2009. 8.
증가율은 전년 대비 -20% 수준이고 앞으로 세계경제가 V자형으로 좋아질 전망은 거의 없으므로 앞으로도 이 수치가 크게 개선될 가능성은 낮다.13) 우리나라의 국내 총생산의 반 정도는 외국으로 수출되는 물량이니 수출이 이렇게 줄어든다는 것은 물량 기준으로 국내 생산, 따라서 고용이 작년 대비 10% 씩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표에서 보듯이 수입의 감소폭이 30%를 훨씬 넘기 때문에 GDP 통계의 대외부문(수출-수입)은 상당한 폭의 플러스 요인(금년 상반기 중 210억 달러 흑자로 GDP 약 2.5%의 증가에 해당)이 되고 있지만 큰 폭의 생산감소, 그리고 뒤이은 고용 감소는 필연적이다. 수입 감소 역시 국내 투자의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미래의 성장 전망 역시 어둡다. <표6>은 내수용 자본재 수입이 30% 가까이
<표6> 한국의 내수지표
|
|
|
2008 |
|
2009 |
||||||
|
|
|
연간 |
6월 |
3/4 |
4/4 |
|
1/4 |
2/4 |
5월 |
6월 |
|
소비재판매액 |
|
1.0 |
-0.7 |
1.4 |
-4.2 |
|
-4.9 |
1.5 |
1.6 |
7.3 |
|
(백화점 매출) |
|
0.5 |
5.7 |
0.2 |
-5.0 |
|
1.4 |
3.0 |
4.6 |
3.3 |
|
(대형마트 매출) |
|
2.2 |
2.7 |
-0.2 |
-1.2 |
|
-5.0 |
-2.8 |
0.2 |
-4.5 |
|
설비투자지수 |
|
-4.3 |
-2.7 |
3.0 |
-13.4 |
|
-17.7 |
-13.7 |
-16.2 |
-5.6 |
|
내수용자본재수입 |
|
6.1 |
8.2 |
17.4 |
-11.9 |
|
-29.6 |
-27.9 |
-29.1 |
-22.4 |
|
국내기계수주 |
|
-5.5 |
5.6 |
-7.6 |
-39.5 |
|
-36.0 |
-11.2 |
-16.1 |
7.8 |
|
건설기성액1) |
|
4.7 |
6.6 |
10.6 |
-2.2 |
|
4.5 |
6.6 |
-0.7 |
14.0 |
|
건설수주액1) |
|
-9.0 |
-23.0 |
-22.7 |
-6.5 |
|
-16.5 |
-2.0 |
-18.5 |
17.9 |
* 한국은행, 최근의 국내외 경제동향, 2009. 8.
감소했으며 그 결과 설비투자지수도 -15%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재 -2% 정도인 한국의 경제성장은 수요 측면에서 거의 전적으로 소비와 정부지출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지출 규모는 이미 보았고 소비의 증가는 <표6>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백화점 판매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것은 상층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즉 현재의 성장이란 감세와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자산효과로 상층의 소비가 늘어나는 데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자산가격이 서서히 상승해서 민간소비가 늘어나고 그 동안 세계경제가 회복되어 수출도 증가하여 바야흐로 설비투자가 증가하기를 학수고대할 것이다. 그러나 자산 가격은 투기 성향에 의해 떼거리(herding)의 움직임을 보이며 중국을 빼고 유럽이나 미국, 일본의 수요가 금방 늘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느다. 여기에 정부의 고민이 있다.
2) 이명박식 성장주의의의 귀결 - 공공성의 파괴와 생명의 위협
수도권 규제완화, 재건축 규제완화, 부실 건설사들에 대한 9조원 이상의 지원, 5+2 정책(광역 클러스터 정책), SOC 건설, '4대강 정비사업', 녹색성장 계획은 모두 ‘전국의 삽질’(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의 발언) 정책이다. 이는 정확히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정책을 답습하는 것이다.
이러한 투기 정책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요는 이미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중산층이 이런 투기수요 유발 정책에 넘어가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 성공하는 경우 우리는 미증유의 거품폭발을 거쳐 2010~11년경 -5~-10% 성장이라는 대위기를 맞을 수 있고, 다행히 중산층이 말려 들어가지 않는 경우 약간의 거품을 거친 후 3년 이상 지속되는 0~-2%의 장기침체를 맞을 것이다14). 더 큰 거품으로 거품을 덮는다는 이명박 정부의 발상은 결국 그 폭발과 더불어 한국발 금융위기, 나아가 외환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폭탄을 끌어안고 있다. 부동산과 자장면이 똑같다면서 분양원가 공개를 거부한 노무현 정권이 불러온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부실은 1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짓기만 하면 돈벼락을 맞는다던 주상복합 건설 사업에 저축은행(12조 2천억원), 은행(47조 9천억원+매입약정 10조원), 그리고 제2금융권이 파악도 되지 않는 돈을 쏟아 부었다. 헛된 욕망은 일반 국민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 빚을 내서라도 집을 못사면 평생 이사만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리라는 초조함에 서민들까지 열심히 은행을 찾았고 위험한 기업대출보다는 안전한 고리대를 챙기자는 금융기관들은 그 욕망을 부추겼다. 한국은행의 2008년 9월 발표로도 가계 빚이 660조 3000여억원이었다. 그런데도 금융패닉이 진정되자 마자 부동산 가격이 흔들리고, 더구나 은행은 넘쳐나는 유동성을 부동산 담보 대출로만 풀고 있다. 만일 현재의 투기정책이 실물경기의 침체와 맞물려 결국 부동산 값의 폭락을 가져 온다면 곧 대규모 실업과 임금삭감이 닥칠텐데 제대로 원리금 상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수출과 부동산으로 불만 지피면 규제완화와 민영화가 자동적으로 우리 경제를 선진화할 것이라는 주문 역시 이미 실천되고 있다. 특히 공기업 민영화는 이명박 정부의 구미에 딱 맞는 정책이다. 첫째 국민들은 공기업에 대한 불만이 많다. 우리의 공공서비스가 국제 수준과 비교할 때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에 관한 객관적 평가와는 무관하게, 공기업은 비효율적이며 ‘철밥통’이라는 예단은 누구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 20년 동안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그랬듯 '개혁'의 이름으로 공공성 파괴가 자행되는 것이다. 둘째, 공기업 민영화는 단숨에 엄청난 수입을 보장한다. 철도나 우체국과 같은 네트워크 산업의 자산은 천문학적이다. 경기를 살리겠다고 약속한 임기 내 70조원 규모의 소득세 인하, 법인세 인하 등 감세정책과 최근 편성한 대규모 건설투자가 초래할 엄청난 규모의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셋째, 이런 어마어마한 기업을 인수할 능력은 재벌만 가지고 있다. 민족주의적 감정에 호소하면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 부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일일이 폐해를 거론할 것도 없이 이러한 민영화/규제완화는 현재 제공되는 최소한의 필수적 공공서비스도 무너뜨릴 것이다. 예컨대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건강보험(정보의 비대칭성), 교육(외부성이나 평등 지향) 등 가치재 산업을 민영화하면 고급 서비스 시장이 발전하는 대신 공교육이나 공공의료에 투입되는 자원과 인력이 줄어들어 사실상 공공성이 무너지게 된다. 일반 국민은 그 동안 누리던 공공서비스 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전기, 철도, 개스, 수도, 우편 등 네트워크 산업의 경우에는 자연독점과 교차보조의 필요성 때문에 공기업이 담당해 왔다. 이런 산업을 민영화하면 일반적으로 공공요금이 상승하는 가운데, 특히 인구가 희박한 지역에 공급되는 서비스 가격은 급등하거나 서비스 자체가 끊어질 수 밖에 없다. 어떠한 민간기업도 교차보조금을 주면서까지 이런 서비스를 유지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촛불의 기세에 눌려 건강보험 민영화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지만, 보험업법을 개정해서 민간의보를 확대하고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병원당연지정제의 폐지로 이어져 곧 건강보험을 붕괴시킬 것이다.
더구나 이제 비준만 남겨 놓은 한미 FTA는 한번 민영화되거나 규제가 완화된 분야에서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라도 되돌아갈 길을 끊어 버린다. 서비스 분야 현재 유보에 적용되는 래칫 조항(역진불가능 조항)이나 투자자국가제소권(ISD)은 재국유화라든가 공적 규제의 강화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커튼을 내리기는 커녕 이제 겨우 2막인양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가장 빠른 회복 또는 복고는 또한 가장 빠르게 시대착오를 증명할 뿐이다.
3. 무엇을 할 것인가
1) 아래로, 또 아래로 - 자산재분배와 풀뿌리 공동체
무엇을 할 것인가. 위기에 대한 비상대책과 장기적인 생존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선 최소한 50조원의 공적자금을 마련해서 부실을 도려내야 한다. 단 10년전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잘못을 고통분담이라는 이름으로 고스란히 국민이 떠 맡은 결과, 그들은 또 다시 돈 잔치를 벌였고 정확히 10년 만에 똑같은 상황을 맞았다.
투기를 불러 일으킨 15년 전의 공무원들이 장차관을 하고, 또 금융기관에 포진해 있다.15) 그리고 그들이 이제 또 다시 이 위기를 수습한다며 세금을 주무를 것이다. 금융기관의 경영진은 예외없이 갈아야 하고, 책임있는 국장급 이상 공무원은 퇴출해야 한다. 건설 자본은 이 참에 세계의 평균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국민의 돈이 들어간 금융기관은 자금중개와 안정된 금융시스템의 유지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국민이 통제해야 한다. 국제적 투자은행이라는 헛된 꿈을 지닌 경영자와 공무원은 모두 쫓아내야 한다.
부자들 감세를 철회하고 그 돈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 도로에 투자할 돈이라면 군단위에 병원을 만들어야 한다. 사교육을 폐지하고 등록금을 줄여서 30-40조원의 돈이 소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건강보험의 보장율을 80%까지 높여서 민간보험에 들어간 돈이 풀려나야 한다(약 5조원). 소규모 1가구 1주택의 가계 파산자의 집은 정부가 원가로 사들여야 한다. 한반도 대운하에 들어갈 돈을 전혀 쓰지 않고도 전국의 아름다운 숲과 오솔길을 늘리고 이을 수 있다. 고통을 분담한다며 공기업의 노동자 10%를 해고하는 이 정부의 아둔함을 노동조합이 따라 해서는 안된다. 노동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나누고 비정규직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투기정책(수도권 규제완화, 종합부동산세 폐지, 재건축 규제완화 등)은 철회되어야 하고 반대로 자산가격을 하향 안정화시키고 공동체의 자산소유를 늘려야 한다. 네트워크산업(전기,수도,개스,철도,우편등)과 가치재산업(의료,교육,주거)의 민영화, 시장화를 중지하고 공공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 모두를 풀뿌리 공동체 차원에서 실천하는 것이 30년짜리 위기에 대한 대응의 올바른 방향이다. 이러한 정책을 체계화한다면 어느덧 케인즈의 소득재분배를 넘는 새로운 자산재분배의 경제학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케인즈로 되돌아가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오로지 아래로, 또 아래로 돈이 흐르게 만들어야 한다. 부자들이 이길 수 밖에 없는 게임에 스스로 뛰어 들면서(사교육, 부동산, 민간보험) 내 가족만은 살 수 있으리라는 헛된 믿음을 버려야 한다. 우리 모두 살 길만 있지 나만 살 길은 없다.
2) 쓰나미를 막을 방파제 - 통화금융체제의 개혁과 아시아 금융협력
대외적으로는 금년에 또 닥칠 가능성이 높은 외국발 금융위기의 해일을 막을 방파제부터 쌓아야 한다. 외환보유고, 단기외채, 경상수지, 만기불일치의 대용변수 등으로 구성된 ‘인계철선’(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신호)을 설치하고 외환시장 및 자본시장의 패닉을 진정시킬 수 있는 ‘과속방지턱’(상황에 따라 자본유출입을 조절하는 장치)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통화불일치의 정도에 따라 환율의 변동을 제한하고 포트폴리오의 유출입도 규제해야 한다. 또한 증권거래세인 케인즈세와 외환거래세인 토빈세를 결합한 이중가변토빈세(자본유출입 및 경기상황에 따라 세율 조정)를 도입하고 유입자본의 일정 비율을 한국은행에 1년 단위로 예치하는 외환가변유치제도도 상황에 따라 발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65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로도 환율의 안정성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아이켄그린이 말하는 ‘원죄’(original sin, 자국 통화, 예컨대 원화로 해외에서 기채를 할 수 없는 것) 때문이므로 우선 한중일 세 나라의 이해가 일치하는 아시아 채권시장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통화스와프의 규모를 늘리고 발동의 요건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등 아시아통화안정체제의 제도화도 더 빨리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의 외환보유고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현재 64% 정도)을 점진적으로 줄여서 달러 패권의 약화라는 100년짜리 경향에 발맞춰 나가야 한다. 버냉키 등 주류경제학의 주장인, 변동환율제와 통화안정정책의 결합은 한국과 같이 달러에 강하게 연동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금융마비를 가져 올 뿐이라는 것이 증명됐다. 요컨대 달러와의 연계를 줄이고 아시아 통화와 결합하는 것, 환율변동의 폭을 줄이고 금융시스템 전체의 안정을 꾀하는 것이 통화금융체제 개혁의 방향이다.
한국의 기재부(구 재경부)는 지난 10여년간 오로지 자본시장의 완전 자유화와 투자은행 설립을 목표로 움직였다. 바로 그 모델인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현재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영을 배우려면 물에 들어가야 한다”(박병원 전 경제수석)는 해괴한 논리로 오히려 박차를 가했다. 이미 자본시장 통합법, 재벌의 은행 소유를 노리는 금융지주회사법, 은행법 개정 등은 국회를 (부분) 통과했다. 거꾸로 투기를 불러 일으키는 잘못된 유인구조와 부실한 규제를 한꺼번에 손봐야 국내발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통화가치 안정이라는 한국은행의 협소한 목표를 금융시스템의 안정으로 확대하여 훨씬 많은 힘을 주어야 한다.
<참고그림1> <참고그림 2> <참고 표 1>
1) G20는 각국의 감독기구로 구성된 금융안정위원회(Financial Stability Board)를 설립하여 국제적 거시감독을 맡기기로 하고 IMF는 이 기구를 지원하도록 했다. 이 기구의 위상(IMF와의 관계 등), 그리고 강대국 감독기구의 권한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하는 가버넌스는 모두 미지수이다.
2) IMF의 오류(특히 동아시아위기 이후 채권자의 일방적 이해를 위한 공식적 구조조정 요구)에도 불구하고 G20가 IMF의 역할에 관한 심각한 방향 수정 없이 단지 IMF 기금을 확대한 것은 국제기구의 문제점(특히 대출자 의 도덕적 해이를 감독할 책임)이 앞으로도 반복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3) 주11)의 그림에서 보듯이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흑자국의 GDP 대비 자극정책 규모는 최고 수준이다. 반대로 만일 흑자국이 달러 유입으로 인한 통화증발을 막으려고 통안증권 발행 등의 불태화정책을 쓴다면 흑자국은 국내의 수요 부족을 야기시킨다. 재정확대 정책은 국내수요의 보충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국내 신용경색을 우려해서 금융확대정책과 재정확대정책을 동시에 쓰는데 투자수요가 없다면 돈은 주식과 부동산으로 몰려간다. 물론 불태화정책을 쓰는 경우에도 구조적인 양극화로 인해 내수가 부족한 경우 돈이 자산시장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글로벌 불균형은 환율 및 금리정책을 통해 흑자국과 적자국 양 쪽의 버블경제와 관계를 맺는다.
4) 대공황 당시 어빙 피셔가 말한대로 자산가격이 하락하면 담보가치가 떨어져서 부도가 나고 이에 따라 또 다시 자산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을 말한다.
5) 대공황 당시에도 29년에서 32년에 이르는 동안 5번의 주가 급등이 있었다.
6) 만일 출구전략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이자율 인상과 같은 단순한 정책을 언제 시행하느냐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경제모형의 탄성계수가 심하게 요동하는 상황(사람들의 떼거리행위가 일상화하고 대규모화하는 상황)에서 정확한 시점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의 뉴딜처럼 전면적인 자산/소득재분배와 금융규제/자본통제와 같은 정책 패러다임을 완전히 이동시키는 것, 즉 현재의 계급역관계를 뒤흔들 수 밖에 없다. 내 보기에 UN 전문가위원회(스티글리츠 위원회)의 제안이 우리가 제기한 3중의 위기에 대한 폭넓은 대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올바른 출구전략에 가장 가깝다. 그러나 현재는 그 이상의 정치적 동원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케인스의 생각처럼 단순히 답을 모르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7) 이론적으로 보자면 미국책임론(쌍동이적자론)과 중국책임론(저축광신론)은 축과 투자간의 국제적 항등식의 양변을 각각 원인으로 본 데 불과하며 따라서 양쪽의 논리도 얼마든지 각각 구성할 수 있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지금 어떤 쪽이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고 어느 쪽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힘을 가지고 있느냐일 것이다.
8) 강도가 상당히 약화되기는 했지만 둘리나 버냉키, 서머스 모두 금융위기 이전의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즉 글로벌 불균형은 여전히 유지가능하거나 일시적인 현상이며 문제가 있다면 중국과 산유국에 있다는 것이다.
9) 일관성있는 자유무역론자인 바그와티는 동아시아 외환위기 직후 “아직도 완전한 자본 이동이 불가피하고 지극히 바람직스럽다”고 믿는 ‘자본신화’가 주류 정책가들 사이에 가득하다고 한탄한 바 있다. IMF의 수석 경제학자였던 로고프도 2003년 자본시장의 개방이 경제성장을 가져오기보다 오히려 불안정성을 심화시킨다는 논문을 발표해서 주목을 빋았다. 그러나 제2의 대공황이랄만한 위기를 맞았어도 주류경제학의 분위기는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두 번째 위기, 즉 이론 상의 위기 역시 거의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버냉키나 서머스 등 ‘자본신화를 믿는 학자 겸 관료들의 반격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런 의미에서도 신자유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0) 기실 동아시아공동체론은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라는 국정지표를 내세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먼저 제창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던, 또한 남북관계에 집중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국내 구호로만 사용했을 뿐 아무런 국제적 이니셔티브도 취하지 않다가 급기야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정반대 방향으로 치달았다. 더 불행한 것은, 현재의 달러기축통화제도를 부정하는 브라운 영국총리,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포스트 브레턴우즈 체제에 찬성하다가 G20에서는 갑자기 현재의 IMF 체제 강화를 역설하는 등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이명박씨가 우리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11) GDP 대비 자극정책의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한 재정지출의 효과도 세계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 편에 속한다. 도표는 크리스티나 로머 홈페이지.
12) 새만금 사업에서 보듯이 대형 토목공사는 지역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고 사업의 문제점이 드러나도 계속되는 경향이 있다.
13) <참고 그림1>과 <참고 표1>에 나타나듯 주요 수출국에 대해서 거의 비슷한 비율로, 또한 거의 모든 품목에서 거의 비슷하게 수출이 감소했다. 단지 대중국 수출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자동차, 반도체 등 주요 품목의 수출 감소율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언론에 보도되는) 수출경기가 지표에 비해 낫게 보이는 것 같다.
14) 이미 그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말 현재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모두 332조 8000억원으로. 올해 들어서만 19조 4000억원이 늘었다. 이 정도라면 우리 국민들의 낙천성도 놀랄만 하다.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